탈영병 잡는 군인 안준호(정해인)는 종종 환영을 본다. 눈앞의 죽음을 막지 못한 뒤부터다. 존경하던 선임의 극단 선택을 코앞에서 본 후에도 그랬다. 선임은 때때로 준호 앞에 나타나 “변한 게 없다”고 읊조린다. 진실은 묻혔다. 조직은 그대로다. 얻은 것이라곤 깊은 무력감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28일 공개된 넷플릭스 ‘D.P.’ 시즌2는 이 단어와 함께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호는 뭐든 해보려고 한다. 석봉(조현철)이 말했듯 뭐라도 해야 뭐든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시즌1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데서 오는 무력감으로 막을 내렸다면, 시즌2에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보려는 인물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2일 서울 역삼동 한 카페에서 만난 한준희 감독은 ‘D.P.2’ 기획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 감독은 동명 원작을 쓴 김보통 작가와 함께 ‘D.P.’ 시즌 1·2의 대본을 집필하고 연출도 맡았다. “조석봉 사건을 겪은 인물들이 이전과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뭘 할 수 있는데?’라는 질문을 안고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가려는 모습을 시즌2에 담으려 했습니다.”
한 감독은 “시즌2는 책임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등장인물 저마다 그간 외면해온 책임을 직시해서다. 마음에 얹힌 돌덩이는 그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준호는 특히 필사적이다. 군이 폭력을 은폐하고 방조해온 기록을 들고 탈영한다. 자신의 앞날을 건 싸움이다. 한 감독은 “준호는 모두가 괜찮다고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하는 일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라며 “옆에서 보면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지만 결국 그런 사람들이 뭔가를 바꾼다”고 말했다. 준호가 D.P 십수 명을 제압하는 장면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나왔지만, 한 감독은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질주하는 인물이 처절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변한 건 준호만이 아니다. 수다스러웠던 한호열(구교환)은 조석봉 사건 이후 입을 닫는다.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속은 유약하고 섬세한 호열이 자기 방식대로 뭔가를 잃고 회수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한 감독 바람이 반영된 설정이다. 박범구(김성균)는 구태를, 임지섭(손석구)는 권위를 벗는다. 시스템에 충성하던 서은(김지현) 중령조차 그 부조리를 마주하고 시스템 반대편에 선다. 감독은 이런 변화로 일말의 희망을 제시하고 싶은 듯하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내 승소하거나 비긴 사례가 없대요. 하지만 싸운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죠. 준호나 호열 같은 사병뿐 아니라 간부들도 폭력을 계속해서 목격하며 자기 역할을 고민할 거예요. 범구의 마지막 선택을 통해 그런 고민을 하는, 좋은 어른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진희, 정석용 등 베테랑 배우와 문상훈, 배나라, 최현욱 등 신인 배우들의 연기도 볼거리다. 한 감독은 “지진희는 그간 신사답고 강단 있는 캐릭터를 자주 맡았다. 구자운 역시 관점을 달리하면 이전 캐릭터들과 비슷하다. 정석용과는 영화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 때 함께 작업했다. 그에게 안타고니스트(주인공과 적대 관계인 인물)를 맡기고 싶었다”고 캐스팅 비화를 들려줬다. 유튜브에서 일타강사 등 여러 부캐릭터를 선보인 문상훈과 뮤지컬 무대에서만 활동해온 배나라에겐 현장 모니터링을 제한했다고 한다. “극한의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배역이라 자기 모습이 어떻게 나오는지 덜 신경 쓴 채 연기하게 하고 싶었다”는 판단에서다.
‘D.P.2’는 내내 장마 속을 걷는 듯 어두운 분위기지만, 마지막 쿠키 영상에선 한줄기 햇볕을 내리쬔다. 비극의 구렁텅이를 걸어야 했던 캐릭터들에게 보내는 한 감독 나름의 위안처럼 보인다. 그는 “(시즌2 결말은)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이길 바랐다. 호열은 사회에서 삶을 다시 시작할 거고 준호 역시 자기 몫의 일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D.P.’가 시즌3로 이어질지는 모르겠으나 캐릭터들이 화면 밖에서 조금이나마 행복할 여지를 두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