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늘 별로인줄만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장점도 많고 열심히 살아온 것 같아요.”
최근 20~30대 청년들 사이에서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를 확인하고 공유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청년들은 생기부를 읽고 “감동받아 회사에서 눈물이 고였다”, “나도 잊고 있던 장점을 발견했다”는 등 과거의 모습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생기부는 교사가 학생의 학업성취도와 인성을 종합적으로 관찰하고 평가해 학생을 지도하고 상급학교 진학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작성한 문서다. 정부24 홈페이지에서 간단한 개인 인증절차를 거치면 확인할 수 있다.(2003년 이후 졸업생만 가능)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지난 5일 X(구 트위터)에서 실시간 트렌드에 올랐다. 발급량이 증가해 정부24 홈페이지 서버가 잠시 멈추기도 했다.
생기부엔 주로 교과 성적, 수상기록, 자격증, 봉사활동 등의 정량평가가 담겨 있다. 반응이 좋은 건 담임선생님이 직접 작성한 ‘진로지도사항’과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이다. 당시 담임선생님의 눈에 비친 각자의 학창시절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미래지향적이고 긍정적으로 작성해야 한다는 교육부 지침에 따라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룬다. 청년들이 자신의 생기부를 읽고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말하는 이유다. 최근 직장인 신모(30)씨는 담임선생님이 적어준 종합평가를 읽고 회사에서 눈물이 고였다. 신씨의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은 그를 “밝고 사랑스러운 학생”이라고 묘사하며, 부모님께 “(신씨를) 소중하게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적었다.
생기부 기록은 큰 위로가 되거나, 앞날을 계획하게 했다. 차씨는 “그동안 내가 잊고 있던 장점이 생각났다”며 “과거의 내가 열심히 살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 같다. 자존감이 회복되고 삶에 활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직장인 전모(27)씨는 “고교시절 장래희망과 지금의 직업이 다른 걸 보니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더 재밌는 것 같다”며 “앞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인생을 개척하겠다”고 다짐했다.
생기부를 직접 작성하는 인천 한 중학교 교사 김모(30)씨는 생기부 조회가 유행인 걸 보고 걱정이 앞섰다. 졸업한 학생들에게 생기부로 민원이 들어올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동시에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청년들이 생기부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동기부여를 한다니, 더 열심히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청년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생기부를 확인하는 유행에 대해 2030세대의 특성과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2030세대는 타이트한 규범을 정하고 이를 지키는 방식으로 성장하기보다,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활력을 찾아 성장하는 세대”라며 “(생기부 확인이) 청년들에게 가능성을 발견하고 사회에 기여하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생기부 조회에서 얻은 만족감이 심리적으로 좋은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과거를 돌이켜보는 현상은 사회적으로 성취감을 얻기 힘든 현실을 보여준다”며 “경쟁으로 지친 청년들의 어려움을 반영하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이어 임 교수는 “생기부는 사람을 보는 다양한 관점 중 긍정적인 관점에서 서술한 것”이라며 “심리학의 예언효과처럼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평가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