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은 한국영화의 총 개수다. 만 10달 동안 개봉한 한국영화 531편 중 관객 수로 손익을 넘긴 작품이 1%도 안 된다. ‘범죄도시3’(감독 이상용)를 필두로 ‘밀수’(감독 류승완), ‘잠’(감독 유재선)와 ‘30일’(감독 남대중)이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다.
이미 팬덤을 구축한 ‘범죄도시3’와 여름 텐트폴 기대작이던 ‘밀수’를 제외하면 신인 감독의 데뷔작 ‘잠’과 상품성이 없다고 여겨지던 ‘30일’의 선전은 기대 밖이다. 영화계에서는 이미 작은 영화들이 보여준 가능성에 눈독 들이고 있다. 올여름에도 경쟁작에 비해 비교적 적은 예산이 투입된 중간급 영화 ‘달짝지근해: 7510’(감독 이안)이 준수한 성적을 거둬 화제였다. 중간급 영화들이 선전하다 보니 업계 내에서도 달라진 관객 취향을 두고 여러 의견이 나온다.
최근 업계 내 뜨거운 감자는 ‘30일’의 예상 밖 흥행이다. ‘30일’은 동 시기 주요 개봉작에 비해 상대적 약체로 꼽혔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개봉하기 전까지 박스 오피스 1위 자리를 꾸준히 지켰다. 성공에는 입소문이 주효했다. 실관람객 사이에서 긍정적인 평이 이어지며 개봉 첫 주보다 둘째 주 주말에 더 좋은 성과를 거뒀다. 관객이 꾸준히 모이다 보니 ‘가장 보통의 연애’(감독 김한결) 이후 4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달성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 영화로도 이름 올렸다. 로맨스·멜로 장르 영화는 상품성이 없다는 기존 편견을 뒤엎은 셈이다.
OTT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진 시대에 ‘30일’의 흥행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이전까지는 극장을 찾는 관객이 줄어드는 걸 극장용 영화와 OTT용 영화를 구분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때문에 주요 작품은 기술특별관 개봉을 타진하는 등 체험형 콘텐츠의 중요성을 높이 샀다. 하지만 ‘30일’이 성공을 거두면서 취향이 새로운 화두로 올라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계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30일’이 흥행하며 입소문의 힘을 또 한 번 느꼈다”면서 “관객은 본인 취향에 맞는 영화를 본다는 당연한 논리를 재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성공 사례가 생기면서 업계 내에선 규모가 작더라도 이야기 구조가 탄탄한 영화를 향한 수요가 많아졌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요즘은 투자자들부터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작지만 강한 영화를 찾으려 한다”고 귀띔했다.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건 중간급 영화의 장점으로 꼽힌다. 대형 자본이 들어갈수록 이를 회수하기 위해 더 많은 관객을 필요로 한다. 관객몰이를 위해 마케팅 비용을 포함한 여러 제반 비용이 발생하면 그만큼 매출 부담은 더해진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도 그에 상응하는 관객 수를 확보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면서 “위험도를 줄인 똘똘한 영화들이 주목받는 이유”라고 짚었다. 이어 “요즘 관객들은 묵직한 주제의식을 담은 영화보다 실질적으로 재미있는 작품을 원한다”면서 “작은 영화여도 재미라는 본질을 충족한다면 성공도가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