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무슨 노래 냈는데?’
래퍼 딘딘은 한때 자신을 향한 이런 평가에 주눅 들었다. 2013년 Mnet ‘쇼미더머니2’로 데뷔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신곡을 냈는데도 자신을 예능인으로만 아는 사람이 많았다. 동료 음악인들이 상을 받으면 질투가 나 축하해주기도 쉽지 않았다. 데뷔 직후 ‘예능 블루칩’으로 불리던 래퍼의 남모를 자격지심이었다. ‘방송 때문에 바빠서 음악 할 시간이 없다’며 고민을 외면하던 그는 ‘본업을 놓으면 안 된다’는 개그맨 양세형의 조언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즈음 첫 정규음반을 내면서 삶이 많이 바뀌었어요. 내 음악이 생겼다고 느끼면서 좀 더 단단해졌어요.” 8일 서울 신수동 슈퍼벨컴퍼니에서 만난 딘딘이 들려준 얘기다.
KBS2 간판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로 대중에게 친숙한 그이지만, 시작은 힙합이었다. 학창시절 캐나다에서 릴 웨인에 반해 랩 음악을 섭렵했다. 한국에 들어와 군 복무를 마친 뒤 ‘쇼미더머니2’에 도전해 7위까지 올랐다. “가진 건 패기뿐인 철부지” 시절이었다. ‘엄카’(엄마 카드)를 긁으며 스웨그를 뽐내던 그를 예능계가 먼저 점찍었다. MBC ‘진짜 사나이2’ 등에 출연하며 이름값을 높이면서도 딘딘은 음악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랩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보기로 했다. “랩을 악기처럼 쓰자”며 다른 가수와 듀엣곡을 냈고 때론 직접 노래도 불렀다.
틱톡에서 입소문 타 음원 순위를 역주행한 ‘이러면 안 될 거 아는데 너 앞에만 서면 나락’도 이런 결심에서 탄생했다. 딘딘은 “그 곡이 음원 차트에 오르기까지 1년여가 걸렸다”고 했다. 그에겐 귀한 경험이었다. “언제든 누군가 제 음악을 발견할 수 있도록 좋은 노래를 계속 쌓아둬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를 마련해줘서다. 그는 올해에만 싱글 5장을 냈다. 대부분 이별 노래다. 딘딘은 “음악을 사업으로 대했다면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밝은 곡을 냈을 것”이라며 “하지만 음악에는 내 진짜 감정을 담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 딘딘은 “흑역사”로 느끼던 옛 노래들을 매만진다. 오는 18일 여는 콘서트 때문이다. 딘딘은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여는 이번 공연을 위해 자신의 음악 인생을 망라한 세트리스트를 짜고 있다. 딘딘은 8년 전 발표한 ‘들이부어’를 편곡하며 “찡했다”고 했다. “원곡에 제 20대가, 편곡 버전엔 지금의 제가 담겼어요. 정말 많이 변했더라고요.” 철이 없어 방황하던 시절도 32세 딘딘을 만드는 자양분이 됐더라고 그는 돌아봤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저를 만나도 그냥 지켜만 보고 싶어요. 다독이거나 조언하지 않고요. 그래야 다가오는 일들을 빠짐없이 겪을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도 저는 자기 확신과 자기연민 사이를 오가요. 하지만 이 또한 담금질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저는 저를 믿어요. 이대로 지치지 않고 더욱 건강한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