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여의도동 KBS 별관엔 묘한 긴장과 설렘이 감돌았다. 3년 간 멈춰 있던 KBS2 ‘개그콘서트’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해서다. 해가 일찍 떨어져 어둑어둑해져도 공개 녹화 현장을 찾은 관객들의 눈빛만은 햇살처럼 반짝였다. 서늘해진 날씨마저 이기는 열기가 넘실댔다.
앞서 ‘개그콘서트’의 방송 재개 소식이 전해지자 대중 반응은 반으로 갈렸다. 종영 당시 시대 감수성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던 만큼 동일한 우려가 나왔다. 반면 최근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모두 사라진 만큼 신인 코미디언이 설 자리가 생긴다는 점에선 기대감이 더해졌다. 관객 500명과 함께한 첫 녹화는 방청 신청자만 2614명이 몰리는 등 관심을 모았다.
웃음 만발·감동 찔끔… 신인 등장엔 응원도
직접 관람한 ‘개그콘서트’의 부활 첫날은 웃음과 감동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우리가 찍은 건 마침표 아닌 쉼표’라는 문구로 포문을 연 이날 녹화는 기존 엔딩 코너였던 봉숭아학당을 시작으로 총 16개 코너가 이어졌다. 기존 ‘개그콘서트’ 시청자라면 익숙한 봉숭아학당·팩트라마를 비롯해 유튜브에서 역수입된 니퉁의 인간극장·조선 스케치 내시 똥군기, 사회상을 반영한 금쪽 유치원·진상 조련사·대한결혼만세, 최근 트렌드를 담은 숏폼 플레이 등 코너 구성이 다양했다. 신동엽·백종원·전한길 등 유명인을 모사한 코미디부터 유튜브 인기 콘텐츠를 ‘개그콘서트’에 맞게 재해석한 시도 등이 눈에 띄었다.
인상적인 건 기성 코미디언이 발판을 자처하고 신인들이 분량 대부분을 차지한 점이다. 신구조화에 중점을 둔 모양새였다. 이날 무대에 선 신인만 13명에 달할 정도다. 신인들이 코너 내용 전반을 채우면 선배들은 능숙하게 관객 참여를 유도하는 식이다. 감동의 순간도 있었다. 공개 코미디의 명맥이 끊겨 6년 만에 데뷔한 신인 코미디언 장현욱이 무대를 마쳤을 땐 객석 곳곳에서 울컥해하는 반응과 응원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추억에 젖은 관객들, 데뷔에 설렌 신인들
약 3시간에 달하는 녹화를 마친 뒤 KBS 별관 앞은 까르르 웃음소리와 파이팅을 외치는 함성으로 가득 찼다. 추억에 젖은 방청객들과 데뷔전을 무사히 마친 신인들의 즐거움과 안도, 행복이 어우러진 현장이었다. 이날 만난 관객들은 “추억의 힘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 수원에서 온 김학진(40)씨는 “엔딩 시그널 음악을 듣자마자 울컥했다”면서 “최장수 코미디 프로그램인 만큼 앞으로도 쭉 이어지길 바란다”고 염원했다. 코미디 마니아를 자처한 김채린(28)씨는 “가족 모두가 TV로 함께 볼 수 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부활해 기쁘다”며 “유튜브에서 보던 분들을 무대에서 만나 새롭고 좋았다”고 소감을 남겼다. 새로운 꿈을 키운 이도 있다.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최지원(17)양은 상기된 얼굴로 “무대를 실제로 보니 언젠간 저곳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고 했다. 최양과 함께 녹화현장을 찾은 심예빈(17)양은 “초등학생 때 즐겨본 프로그램을 다시 보니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며 만족해했다.
방청객에게 향수라면 출연자에겐 기회의 장이었다. 이날 숏폼 플레이 코너를 통해 첫 데뷔한 신인 코미디언 황은비(22)씨는 감격에 겨워하는 모습이었다. 코미디 유튜브 채널 객끼에서 활약하던 황씨는 ‘개그콘서트’ 출연 공고에 합격해 코미디언 생활을 정식으로 시작했다. 그는 ‘개그콘서트’를 “코미디에 뜻을 가진 이들에겐 한 줄기 빛 같은 무대”라고 표현했다. 황씨를 축하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객끼 동료이자 코미디언 지망생 김학영(25)씨와 장다빈(27)씨 역시 “코미디를 꿈꾸던 사람들에게 희망이 생겼다”면서 “‘개그콘서트’가 다시 시작한 만큼 극단과 코미디언 모두가 부흥하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황씨는 “막상 데뷔무대에 서보니 긴장보다 설렘이 더 컸다”면서 “‘개그콘서트’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의지를 다졌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