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가 만든 풍경…MZ는 현금쓰기 챌린지 중

고물가가 만든 풍경…MZ는 현금쓰기 챌린지 중

먹거리·교통비까지…끝 모르는 고물가
현금 챌린지 나선 청년층…전세계적 트렌드
“소득 대비 소비 명확히 인지하려는 것”

기사승인 2023-11-16 06:05:01
고물가로 청년 사이에서 카드가 아닌 현금으로만 생활하는 이른바 ‘현금 챌린지’가 인기다. 인스타그램 캡처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현금을 써보니, 카드 명세서에 찍힌 숫자만 보는 것보다 돈이 나가는 게 확실히 체감되더라고요”

명품 소비, 스시 ‘오마카세’는 옛말이다. 고물가로 카드 대신 현금만 사용하며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청년이 늘고 있다. 15일 SNS에 ‘현금챌린지’, ‘현금 생활’ 등 키워드를 검색하자 2만 개가 넘는 게시물과 영상이 검색됐다. 현금챌린지는 매월 외식, 생필품, 의류 등 항목별로 지출할 현금을 정한 뒤 목적과 시기에 맞게 쓸 돈을 다이어리 바인더에 넣어 두고 쓰는 것을 말한다. 현금 생활의 줄임말인 ‘현생’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현금챌린지 용도로 제작된 다이어리가 판매 중일 정도다. 

현금 쓰기가 각광받는 이유는 고물가로 지갑 사정이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먹거리 물가가 크게 뛰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공식품과 외식 부문의 2분기 물가 상승률은 각각 7.6%, 7.0%였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3.2%)의 두 배가 넘는다. 햄버거가 12.3% 상승했고, 피자(11.9%), 김밥(9.6%), 라면(9.2%)이 그 뒤를 이었다. 구내식당 식사비(8.2%)의 상승률도 컸다. 지난 9월 서울 지역 짜장면 한 그릇 가격(7069원)은 처음으로 7000원을 돌파했다.

교통비도 올랐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지하철·버스·택시비를 아우르는 운송 서비스 물가는 1년 전보다 9.1% 올랐다. 16년 6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이다. 지하철 요금인 도시철도료는 9.2% 증가했다. 서울지역 지하철 기본요금(카드)은 지난 9월 일반 1250원에서 지난달 7일부터 1400원으로 150원 올랐다. 이러다 보니 올해 2분기 전체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평균 383만1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 줄었다. 처분가능소득은 전체 소득에서 이자와 세금을 뺀 여윳돈을 말한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캐시 스터핑’(cash stuffing)이 입소문을 탔다. 유튜브 캡쳐

신용카드 대신 현금을 쓰면 돈을 절약하는 데 도움이 될까. 지난 2021년 미국 매사추세스 공과대(MIT) 슬로언 경영대학원 연구진이 실험 참가자 뇌를 자기공명영상(MRI)를 통해 관찰한 결과, 결제 수단으로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가 현금 사용 때보다 뇌의 보상 시스템이 더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실험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참가자들은 현금 사용 참가자들에 비해 더 비싼 물품을 사려는 경향이 높았다. 

현금쓰기가 소비 습관 재정립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현금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됐다는 직장인 최모(30·여)씨는 “예전에는 한번 결제를 한 뒤에는 그 지출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겼다”면서 “이제는 한번 큰 지출이 발생한 뒤에는 식비, 생필품비 등 다른 품목 지출을 줄여야겠다는 식으로 정해진 예산 안에서 돈을 쓰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반면 애플·삼성페이 등 간편결제가 활성화된 환경 속에서 현금 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웠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경기도 용인시에 거주하는 박모(29)씨는 “몇달 전 현금만 써보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도중에 중단하게 됐다”면서 “가게나 카페에서 현금을 내밀면 카드만 받는다면서 난감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 돈을 아끼려 현금챌린지를 하면서 이를 위해 다이어리와 속지를 사는 요새 트렌드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설명했다.  

한국 뿐만이 아니다. 현금 쓰기를 통한 지출 줄이기에 대한 청년층 관심은 해외에서도 높다. 현금을 쓰임별로 분류해서 봉투, 바인더 등에 넣고 쓰는 ‘캐시 스터핑’(cashstuffing)은 지난해 말부터 틱톡을 통해 MZ세대 중심으로 입소문을 탔다. AFP 통신은 현금 쓰기가 주목받게 된 것은 팔로워 약 80만명의 틱톡 인플루언서 재스민 테일러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충동구매를 막기 위해 현금 쓰기를 시작했고, 이 방법으로 학자금 대출 3만 2000달러(약 4000만원)을 갚았다고 밝혔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신용카드 사용은 기본적으로 신용을 담보로 소비를 미리 하는 것”이라며 “‘돈을 쓴다’는 인지가 현금보다는 확실히 덜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고물가 시대 본인의 소득 대비 소비가 얼마나 되는지 명확히 파악하고자 하는 소비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과거 과소비를 반성하고, 절약의 한 방법으로 현금을 사용하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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