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를 위한 다정한 침묵 [쿡리뷰]

이소라를 위한 다정한 침묵 [쿡리뷰]

기사승인 2023-12-11 06:00:16
가수 이소라. 에르타알레 엔터테인먼트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적막. 가수 이소라가 콘서트를 연 서울 회기동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은 여느 K팝 공연장과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떼창’은 없었다. ‘찰칵’ 소리도 안 났다. 환호마저 드물었다. “그녀가 그녀답게 노래할 수 있도록” 숨죽여 기다려 달라는 공연 전 안내 문구 덕분이었다. 관객 4500여명이 만든 다정한 침묵이 이소라를 감쌌다. 그 속에서 이소라는 노래했다.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을. 내면에 깊이 침잠한 고독을. “우리가 가야 하는 곳”(‘트랙3’)으로서의 사랑을.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열린 이번 공연은 이소라와 관객 모두에게 특별했다. 데뷔 30주년을 기념한 공연이라서만은 아니다. 이소라는 지난 2년여간 두문불출했다고 한다.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다. 공연장에서 밴드 연주자들 얼굴을 보기가 어색할 정도였다. 노래를 부르는 것조차 싫었다고 했다. 그저 누워만 있었다. “그러다 오늘 나온 거예요.” 이렇게 말하는 이소라에게 관객들은 말없이 박수를 보냈다.

다시 무대에 오른 이소라는 ‘난 행복해’ ‘제발’ ‘바람이 분다’ 등 히트곡으로 공연을 꾸렸다. 한 곡 한 곡이 한국 발라드 역사를 빛내는 명곡이었다. 이소라는 대학생이던 1993년 아카펠라 그룹 낯선 사람들 멤버로 데뷔했다. 2년 뒤 낸 첫 솔로음반은 100만장 넘게 팔렸다. 6집은 경향신문이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오르는 등 호평받았다. 이 음반에 실린 ‘바람이 분다’는 시인 14명이 뽑은 ‘가사가 아름다운 노래’ 1위에 올랐다. 이소라가 공연에서 이 곡을 부르기 시작하자 누군가는 반가운 듯 작게 신음했다. 훌쩍이는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이소라 공연 현장. 에르타알레 엔터테인먼트

지천명을 넘긴 가수는 “몸 나이는 일흔”이라며 웃었다. 대신 마음만큼은 “아기가 된 것 같다”고 했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는 이야기일까. 그는 노래할 때도 아기 같았다. 처음 이별한 사람처럼 새롭고 생생한 슬픔을 토해냈다. 다만 분위기가 마냥 어둡지는 않았다. ‘데이트’ ‘랑데뷰’ ‘첫사랑’ 등 사랑을 시작하는 설렘도 노래했다. 이소라는 발라드 가수로 잘 알려졌지만 록에도 조예가 깊다. 공연도 이승환(피아노), 홍준호(기타), 임헌일(기타), 이상민(드럼), 최인성(베이스) 등 6인조 밴드와 이어갔다. 연주자 한 명 한 명이 실력으로 명성을 떨친 이들이다.

이소라가 4년 만에 개최한 이번 공연 제목은 ‘소라에게’. 소속사 에르타알레 엔터테인먼트는 공연 전 팬들에게 이소라와 얽힌 사연을 접수했다. 어머니에 이어 2대째 이소라의 팬이라는 남성, 시험 문제를 낼 때 늘 이소라 노래를 쓴다는 고등학교 국어 교사, 13시간 동안 ‘트랙6’를 들으며 그림을 그렸다는 화가…. 소속사에 따르면 200명 넘는 팬들이 사연을 보냈다. 이소라는 KBS2 ‘이소라의 프로포즈’와 MBC FM4U ‘이소라의 FM음악도시’를 각각 6년, 5년간 진행했다. 그는 “모든 사연을 진심으로 읽었다. 사연을 보내준 분들이 친구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제가 요즘에 ‘최강야구’(JTBC)를 봐요.” 공연 내내 말을 아끼던 이소라가 불쑥 예능 프로그램 얘길 꺼내자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는 야구와 노래가 닮았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직관 경기를 하면 그 많은 관중석이 다 차요. 사람 소리 하나 안 들릴 정도로 큰 함성이 야구선수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 같아요. 오늘 와주신 여러분도 꼭 그런 느낌을 받아요.”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이 자신을 노래하게 만들었다는 의미였다. 이소라는 “노래하기가 힘들어서 (공연이) 무서웠다. 노래를 많이 부르지 못할 것 같았다”면서도 “오늘 이곳에 와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한 것 같다”고 했다. 또다시 박수가 나왔다. 차분한, 그러나 다정한 응원이 오래도록 공연장에 머물렀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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