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있는 한 쓸모 있는 이야기”…뮤지컬 ‘레미제라블’

“가난이 있는 한 쓸모 있는 이야기”…뮤지컬 ‘레미제라블’

기사승인 2024-01-05 06:00:03
뮤지컬 ‘레 미제라블’ 공연 장면. (주)레미제라블코리아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대표하는 노래 ‘두유 히어 더 피플 싱’(Do You Hear The People sing)은 투쟁이 벌어지는 곳에 자주 소환됐다. 2013년 튀르키예 반정부 시위에서, 2019년 홍콩 범죄인 송화법 시위와 2021년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서도 어김없이 이 곡이 불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2016년 촛불 집회와 여성 혐오 범죄를 규탄하는 2018년 혜화역 시위 등에서 “밝은 아침이 오리라”는 염원이 노래로 터져 나왔다.

반전이 있다. 뮤지컬에선 이 곡의 비중이 크지 않다. 혁명을 준비하던 청년들이 결의를 다지는 장면에서 짧게 흐른다. 2막 마지막에 달라진 가사로 다시 불리지만 그 역시 길지 않다. 그런데도 이 노래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데는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사람들이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기 때문일 터. 그러고 보면 원작 소설을 집필한 빅토르 위고는 초판 서문에 이렇게 썼다. “지상에 무지와 가난이 존재하는 한, 이 책이 쓸모없지 않으리라.”

‘레 미제라블’ 공연 장면. (주)레미제라블코리아

분노한 민중의 노래를 듣고 싶다면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로 달려가시길. ‘레 미제라블’이 부산을 거쳐 지난해 11월부터 이곳에서 공연 중이다. 작품은 장발장의 생을 통해 인간을 착취하는 사회를 비판하고 사랑의 위대함을 역설한다. 장발장은 빵 하나를 훔친 죄로 19년간 복역한다. 출소 후에도 갈 곳이 없다. 전과자인 그를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 장발장은 미리엘 신부의 자비를 경험한 후 달라진다. 자신이 받은 너그러움과 사랑을 사람들에게 베푼다. 억울하게 죽은 판틴의 딸 코제트를 입양한 그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임을 깨닫는다.

‘레 미제라블’은 웨스트앤드 뮤지컬 중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공연된 명작이다. 1985년 런던에서 초연된 후 53개국에서 22개 언어로 번역됐다. 혁명의 순간을 직관한 관객이 1억3000만명에 이른다. 한국 공연은 2015년과 2016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장발장 역에 민우혁·최재림, 자베르 역에 김우형·카이, 판틴 역에 조정은·린아 등이 캐스팅됐다. 공연은 인터파크에서 월간(12월5일~1월4일) 뮤지컬 예매율 정상을 달리고 있다.

작품 제목인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어로 ‘가난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을 가리킬 때도 쓴다. 위고는 빈곤이 범죄로 이어지는 계급 사회를 꼬집으려는 듯하다. 작품은 1832년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6월 봉기 전후를 전후로 한다. 200여년 전 이야기가 시공을 초월해 한국에도 울림을 준다는 건,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가 있다는 뜻. 뮤지컬 가사를 쓴 극작가 알랭 부블리는 지난달 한국 기자들과 만나 “우리 옆에도 선입견에 사로잡힌 자베르와 같은 사람이 있고, 삶에 배신당해 절망하는 판틴이 있다”며 “이 작품 노래가 시위 현장에서 불리는 게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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