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아시아계, 미국 골든글로브를 거머쥐다

성난 아시아계, 미국 골든글로브를 거머쥐다

한국계 작가·배우 참여한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 美 골든글로브 3관왕
이민자 이야기에 주목하는 할리우드 “변화 반갑다”

기사승인 2024-01-08 15:31:15
‘성난 사람들’ 속 배우 스티븐 연(왼쪽), 앨리 웡. 넷플릭스

모든 것은 그 잘난 자동차 때문에 시작했다. 이민 2세대인 한국계 미국인 대니(스티븐 연)는 마트 주차장에서 자신의 트럭을 가로막은 벤츠를 추격한다. 그는 마트에서 화로를 반품하려다 종업원에게 면박을 당한 참이었다. 대니는 욕설을 퍼부으며 벤츠를 쫓는다. 벤츠를 모는 에이미(앨리 웡)도 만만치는 않다. 대니를 들이받을 기세로 엑셀러레이터를 밟는다. 대니는 복수를 계획한다. 에이미도 맞불을 놓는다. 미국 영화·드라마 시상식 골든글로브에서 3관왕을 차지한 넷플릭스 10부작 시리즈 ‘성난 사람들’은 로드레이지(난폭·보복 운전)에서 시작한 두 남녀의 복수혈전을 그렸다.

외신으로부터 “‘오징어 게임’ 이후 최고의 TV 쇼”(영국 GQ)라고 평가받은 이 작품은 7일(현지시간) 열린 골든글로브에서도 식지 않은 인기를 자랑했다. TV 미니시리즈 및 영화 부문 작품상을 받았고, 대니와 에이미를 각각 연기한 배우 스티브 연과 앨리 웡은 주연상을 손에 넣었다. 아시아계 배우가 이 부문에서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작품을 만든 이성진 감독 겸 작가와 스티븐 연은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 갔다. 앨리 웡은 베트남 출신 어머니와 중국계 미국인 아버지를 뒀다.

‘성난 사람들’ 스틸. AP·넷플릭스

‘분노’와 ‘고기’의 공통점은


‘성난 사람들’의 원제는 ‘비프’(Beef), ‘불평’과 ‘고기’를 동시에 나타내는 단어다. 뉴욕타임스는 “이 시리즈는 분노가 어떻게 고기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고 했다. 분노가 고기처럼 “공허함을 채우고 지탱할 힘과 순간적인 만족을 준다”는 분석이다. 대니는 철없는 동생과 사업에 실패한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K장남’이다. 닥치는 대로 일하지만 성격이 똑 부러지지 못해 형편은 늘 곤궁하다. 사회적인 성공을 거둔 에이미도 삶이 불만스럽긴 마찬가지. 현상 유지를 위해선 매일 발버둥치듯 살아야 하는데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마음이 편치 않다.

이 감독은 자신이 겪은 로드레이지에서 영감을 받아 ‘성난 사람들’을 썼다. 작품은 대니가 한인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 등 이민자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리면서도, 현대인 누구나 겪을 법한 자기 파괴적인 충동을 펼쳐내 보편성을 얻었다. 영국 가디언은 ‘성난 사람들’에 별점 4점(5점 만점)을 주면서 “내면의 깊은 슬픔에 맞서는 냉소적인 사람들에 대한 어둡고 실존적인 스릴러”라고 평가했다. “(두 주인공이) 불화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과 자신 모두를 용서할 방법을 찾음으로써 감동을 준다”(VOX)는 호평도 있다.

(왼쪽부터) 스티븐 연, 이성진, 앨리 웡. AP·연합뉴스

“5~6년 전엔 불가능했을 ‘성난 사람들’, 하지만 이젠…”

지난 몇 년간 할리우드는 ‘이민자 이야기’에 주목해왔다. 스티븐 연이 출연한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세대의 애환을 다뤘다. 지난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관왕을 차지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감독 다니엘 콴·다니엘 쉐이너트)는 이민 1세대와 2세대가 겪는 불화와 화해를 보여줬다. ‘성난 사람들’엔 이 감독과 스티븐 연 외에도 조셉 리, 영 마지노, 데이비드 최 등 한국계 배우들이 조연으로 대거 참여했다.

스티븐 연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한국계 미국인의 작품에 공감하며 동시에 한국영화에 주목하는 분위기가 반갑다”며 “넷플릭스 ‘피지컬: 100’을 보니 미국인에게 어떻게 소구할까를 고민하기보단 우리 스스로 어떤 모습으로 보이게 할 것인가 재정비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작품으로도 그렇게 깊게 위로되고 연결되는 느낌을 주고 싶다”고 소망했다. 이 감독도 지난해 8월 내한 당시 “5~10년 전이었다면 ‘성난 사람들’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 같다. 할리우드의 많은 변화 덕분에 (작품 제작이) 가능했다”며 “처음 작가로 데뷔했을 땐 ‘어떻게 하면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글을 쓸까’ 고민했다. 지금은 다양성이 강조되면서 그런 걱정은 없어졌다. 제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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