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데뷔한 그룹 플레이브는 미니 1집 발매 일주일 만에 20만장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스타트업 소속 신인으로는 이례적인 성과다. 발표곡 ‘메리 플리스마스’(Merry PLLIstmas)는 발매 30~100일 이내 신곡의 1시간 이용량을 측정하는 멜론 핫100에서 1위에 올랐다. 반전이 있다. 플레이브는 직접 만날 수 없는 상상 속 스타다. ‘본체’로 불리는 실연자들을 2D 캐릭터로 실시간 렌더링해 활동한다. 26일 소속사 블래스트에 따르면 이들은 올해 콘서트도 계획 중이다.
플레이브 팬덤 ‘플리’ 사이엔 불문율이 있다. 본체를 알려고 하지 말 것. 소속사도 지난해 6월 플레이브 팬카페를 통해 “플레이브의 개인정보 공개는 플레이브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부분으로 간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라고 공지했다. 본체의 신상을 밝히는 행위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에 해당하고, 회사 영업비밀을 침해하며 업무를 방해하고 영업상 손실을 발생시키는 행위라는 설명이다. 팬들도 ‘본체’ 언급을 금기시하는 분위기다. 실연자 신상을 밝힌 사례를 소속사로 제보하기도 한다.
소속사가 플레이브 ‘본체’ 발설 행위에 법적 대응을 한 사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만난 이성구 블래스트 대표는 “(플레이브 뒤에) 실연자가 있으나 그들의 정체를 파헤치는 쪽으로 플레이브 IP가 소비되면 우리 의도를 빗겨 가는 것”이라면서도 “이와 관련해 법적 조치를 취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플레이브를 ‘디지털 펭수’로 표현하며 “펭수 캐릭터의 ‘본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많지만 그의 정체를 파고드는 방식으로 펭수 IP를 소비하지 않는다. 캐릭터 자체를 즐기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다만 ‘본체’로 추정되는 이의 과거 행적이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게시되며 최근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실연자와 버추얼(가상) 가수를 별개로 볼 수 있냐는 데서 이견이 생기면서다. 버추얼 가수는 사생활 문제나 일명 ‘인성 논란’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졌으나 이런 믿음에 균열이 생긴 셈이다. 플레이브 말고도 그룹 이세계아이돌 등이 ‘본체’를 따로 둔 채 활동하고 있다. 버추얼 가수와 작업해본 한 가요계 관계자는 “제작자나 실연자, 팬들은 캐릭터와 본체를 철저히 분리해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며 “버추얼 가수로 활동할 땐 평소와 다른 성격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을 재밌게 받아들이는 듯하다”고 귀띔했다.
실연자가 있는 버추얼 캐릭터를 향한 인신공격은 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 실제 일본에선 버추얼 유튜버를 연기하는 한 여성이 자신의 아바타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자신에게도 피해를 줬다며 소송을 낸 사례가 있다. 도쿄지방재판소(지방법원)는 가상 캐릭터를 향한 비방이 ‘본체’인 인간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봤다. 이 대표도 “플레이브 멤버들이나 실연자를 향해 심한 욕설을 하는 경우에는 법적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