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사태 속 ‘의료전달체계 정상화’ 매듭지어야 [기자수첩]

공백사태 속 ‘의료전달체계 정상화’ 매듭지어야 [기자수첩]

기사승인 2024-04-03 15:58:51
지난 3월1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외래 대기실이 환자들과 보호자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요즘 병원 진료 받기 힘들다고 하니까 건강 잘 챙겨야 해.” 

최근 오가는 안부 인사가 이렇다. 의과대학 증원 방침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한 달을 훌쩍 넘겼다. 잠깐이면 돌아올 거라 여겼던 전공의들은 복귀할 기미가 없고, 최소 인력으로 버티던 의대 교수들마저 병원을 떠나고 있다. 

불과 2달 전만 해도 대학병원은 환자들로 붐벼 문턱이 닳았다. 환자가 넘치니 수도권 곳곳에 새로 터를 잡아 분원을 내겠다는 대학병원들의 움직임도 잇따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한국은 의료 접근성이 매우 뛰어난 편에 속한다. 낮은 의료비와 더불어 인구 대비 병상 수가 그 어느 선진국보다 많다. 미국도 부러워할 만한 의료시스템을 가진 국가다. 

지금 한국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대학병원은 경증 환자는커녕 응급·중증 환자조차 이용이 어렵다. 잡혀있던 진료와 수술 예약은 취소되고 환자들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진료를 받더라도 이전보다 훨씬 길어진 대기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의료 인프라가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병원 곳곳 환자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의료공백이 심화된 이후 의료전달체계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평가도 이어진다. 의사들의 공백으로 상급종합병원의 환자 포용력이 떨어지자 종합병원 등 2차 의료기관과 동네 의원급의 역할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간 상급종합병원 쏠림 현상으로 무너진 전달체계를 손 봐야 한다는 의료계의 주장은 계속 됐지만, 사실상 강단 있는 정부의 중재는 부족했다. 

대학병원이 휘청거리고 환자 피해가 속출한 이제 와서야 정부는 부랴부랴 병원 규모별 역할 분담 시스템을 마련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 진료만, 경증환자는 2차 의료기관이나 의원급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구급차 이용료를 전액 지원하고 회송료 수가 인상률 대폭 인상했다. 필수의료에 특화된 2차 병원, 특수·고난도 전문 병원 육성을 위한 계획도 내놨다.

의사 집단행동으로 인한 의료 대란이 끝난 뒤 현 전달체계가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형병원 의료의 질이 최고다’라는 환자들의 인식을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풀기 어려운 문제다. 지역완결형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우여곡절 끝에 의대 증원이 완료되더라도 전공의를 지역 의료기관에 머물 수 있도록 보다 강력한 회유책이 제시돼야 한다.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완전히 해소될 순 없다. 양보가 필요하다. 환자를, 국민을 위한 양보다. 국민을 중심에 두고 고민하고 구체화하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과정은 당장 진행해야 한다. 세계가 인정하지만, 곳곳에 구멍이 뚫린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공고히 다지는 실질적 논의가 협의체 안에서 이뤄지길 바란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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