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증가가 왜 은행 탓?…정부, 핑계대지 말아야” [인터뷰]

“가계대출 증가가 왜 은행 탓?…정부, 핑계대지 말아야” [인터뷰]

제27대 금융노조 위원장 김형선
“한국 사회, 대전환 필요…주 4일제 유일한 해법”
“예대마진, 역설적으로 은행 건전성 유지”
“필요할 때는 손발처럼 쓰고…금융 노동자 악마화 말아야”

기사승인 2024-08-01 06:24:03
김형선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금융노조 회의실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유희태 기자

“예대마진은 악(惡)이 아닙니다. 역설적으로 이를 통해 은행 건전성이 유지됩니다. 어느 정도 수준의 예대마진이 적정한지에 대한 논의와 별개로, 예대마진이 무작정 잘못됐다고 욕하면 은행은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고객에게 주가연계증권(ELS) 같은 위험한 상품 팔아서 수수료 챙기는 사태가 다시 반복되는 겁니다”

두 달간 내홍 끝에 9만여 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를 이끌 새 위원장이 결정됐다. 금융노조는 박홍배 전 위원장이 총선 출마를 이유로 사퇴하면서 지난 4월 보궐선거를 치렀다. 부정선거 의혹은 법적 공방으로 이어졌다. 결국 김형선 기업은행지부 후보가 제27대 금융노조 위원장으로 지난 19일 당선됐다. 김 위원장의 주요 공약은 주4일제 도입, 농협법 개악과 명칭사용료 인상 저지, 산업은행 등 금융기관 지방 이전 저지 등이다. 김 위원장을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금융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당선 소감은

무거운 마음이다. 산별교섭을 늦게 시작했다. 임금·단체 협상(임단협)에 대한 조합원 기대가 있을텐데 짧은 기간 내 이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에 대한 부담이 있다. 

선거 과정에서 혼란도 있었다. 금융노조가 42개 지부로 빠르게 외적 성장을 이루면서 내부 선거제도와 규약을 점검하고 성찰하는 시간은 부족했다. 산별체제에서 직선제가 조직 간 갈등을 크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직선제를 어떻게 보완할지, 내부 반목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 금융노조는 전산업 최초로 주 5일제를 도입했다. 이번에는 주 4일제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지금도 은행 영업점과 은행원 수가 줄어 고객 불편이 크다. 금융소비자 불편이 가중되지 않을까.

은행 소비자 절반이 1년에 영업점을 한 두번 방문할까 말까다. 점포 폐쇄와 주 4일제 사안을 분리해 봐야 한다. 점포가 너무 줄면 금융 소외계층의 은행 접근성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은행이 영업점을 폐쇄하려는 경우 금융위원회에 6개월 전 신고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지난달 30일 발의했다. 금융노조에서 말하는 건 영업시간, 그 중에서도 오전 영업시간만 조금 뒤로 늦추자는 거다. 오후 시간(4시)은 그대로다. 고객 접근성에 미칠 영향은 적다고 본다. 

주 4일제를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에 대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15년간 280조원을 투입했는데 이 상황이 됐다고 말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 우리가 해법을 찾아야 한다. 미국 포드 자동차사는 지난 1926년 주 40시간, 주 5일제를 도입했다. ‘사람들에게 자동차를 탈 수 있는 더 많은 시간을 주자’는 취지였다. 한국 사회에는 돈을 쓸 시간, 지방에서 여가를 즐길 시간, 아이를 돌볼 시간,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은행원들은 다른 직업처럼 9시에서 6시 근무를 규정하고 있음에도 영업 준비 때문에 8시쯤에는 다 출근해야 한다. 은행원이 아침에 아이들 밥은 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이런 환경을 바꾸자고 20년 동안 얘기했지만 전혀 바뀌지 않았다. 경영진도 오전 시간 외 수당이 줄어들어 환영한다. 생산성 문제가 있는 제조업은 부담스러울테니 금융산업, 대기업부터 먼저 주 4일제를 시작해야 한다. 

-최근 금융당국에서 가계부채를 줄이라며 은행권을 압박하고 있다. 은행이 대출 금리를 올려도 가계대출 증가세는 꺾이지 않는다. 금융당국 대응이 적절하다고 보나.

매우 부적절하다. 정부가 집을 사라는 신호를 준다고 사람들이 판단하면 당연히 가계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주택 구입 수요가 커지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정부는 은행을 탓한다.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금융권 모럴해저드로 모는 상황은 익숙하다. 지난 2022년 래고랜드 발 사태로 채권 시장 불안이 높아졌을 때 시장 안정을 이유로 당국은 은행들에 금융채 발행 자제를 요청했다. 또 당국은 은행권에 예금상품 금리를 낮추도록 압박해 그때 예대금리 차이가 상당히 벌어졌다. 채권시장 개입 등 필요할 때는 금융권을 활용해 놓고, 나중에는 손발이 되어 준 사람들을 비난하는 식이다. 금융권에 책임을 돌려 자신들의 정책적 실패를 모면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예대마진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우려스럽다. 은행들은 사상 최대 수익을 올리면 예대마진(대출금리-예금금리 격차)으로 손 쉽게 돈을 벌었다고 욕을 먹는다. 금융당국에서도 비이자 수익을 강화하라고 주문한다. 그러면 은행은 위험 상품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

지난해 3월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가 파산했다. SVB는 미국 장기 국채 포트폴리오를 보유하다 기준금리 인상(긴축)의 직격탄을 맞아 파산했다. 여기에 비춰보면 한국 은행들은 건전성 관리를 매우 잘하고 있는 거다. 한국 은행들은 전통적 이자장사, 즉 예대마진에 집중한 덕에 리스크를 피했기 때문이다.

예대마진 차가 큰 은행을 공시하는 이런 제도도 과연 어떤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다. 일례로 A은행 같은 경우는 이주 노동자들에 대출을 많이 해줘서 예대마진 금리 차가 크다. 취약계층이 대부업체가 아닌 제도권 안에서 거래할 수 있게 해준 이 은행은 칭찬을 받아야 하나, 욕을 먹어야 하나. 차라리 정부가 은행에 어떻게 경영해야 바람직한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달라.

-정치권에서는 산업은행은 부산으로, 기업은행은 대구로 옮기자고 말한다. 금융노조는 왜 국책은행 지방 이전을 반대하나.

국민의힘에서는 ‘노무현 정부때 민주당에서 먼저 국토균형발전 시작했다, 원래 민주당도 국책은행 지방 이전에 찬성했다’고 말한다. 엉뚱한 소리다. 노무현 정부때 국토균형발전과 더불어 추진했던 게 서울을 동북아 금융허브로 만드는 거였다. 세종시는 행정수도로, 서울은 경제수도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금융산업은 독자적으로 어딜 가서 산업을 일으킬 수 없다. 산업이 있는 곳에 은행이 가는 순서다. 세계 유수 도시를 보면 융자본, 인적자원, 인프라 등이 한군데 집중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지 않나. 산업은행 하나 덩그러니 옮겨놓는다고 지방이 과연 살아날까.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 조차도 대통령 공약사항이라는 것 외에는 이전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금융산업은 지역 사회 육성을 위해 지방은행을 두고 있다. 자금을 끌어들이는 역량이 지방은행과 시중은행 간 차이가 크다. 시중은행은 조달비용 자체가 낮다. 전국단위인 기업은행을 지역으로 내려보내면, 해당 지역 은행이 큰 타격을 입게 된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