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두고 토론회를 열었다. 재계는 상법 개정으로 소송 남발, 경영권 위협 등 부작용이 발생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투자자 측은 소액주주를 보호해야 한국 자본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맞섰다.
민주당은 19일 국회에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상법 개정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직접 토론회 좌장을 맡았고, 재계와 투자자 측에서 각 7명이 토론회에 참석했다. 당초 토론회는 지난 4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12·3 비상계엄 사태로 한 차례 연기돼 이날 개최됐다.
이날 토론회의 최대 쟁점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와 ‘총주주 이익 보호 의무’를 법에 명시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앞서 민주당은 △이사 충실 의무 확대 △대규모 상장사의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당론 채택한 바 있다.
이 대표는 토론 시작에 앞서 “오늘 토론 주제가 매우 어려운 주제이긴 하지만 결국 결정을 해야 하는 문제다. 민주당이 상당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 양측의 의견을 잘 듣고 합리적 의사결정에 이르도록 하겠다”며 “재계와 투자자 측의 이해관계가 서로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합리적인 선을 지켜내며 적정한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계 “행동주의펀드 등의 공격으로 경영권 위협 우려”
재계는 상법 개정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했다.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조항이 오히려 경영 혼란을 가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소액주주의 이름을 앞세운 행동주의 펀드 등의 기업 경영권 공격이 빈번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연중 심팩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까지 확대하면 주주와 회사의 이해가 충돌할 경우, 주주 간 이해가 충돌할 경우 이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의사 결정해야 할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회사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M&A(인수합병) 등을 결정을 했는데 이에 반대하는 주주가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건지, 일반 주주가 고액 배당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이사회는 이익을 유보하고 재투자하기로 결정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등 혼란 상황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인 의문이나 법적 분쟁 가능성이 계속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법률적 리스크가 있는 상황에서 이사진은 방어적이고 현상유지적으로 기업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며 “또 이런 법률 리스크가 있는 한 대부분의 중견기업은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에 큰 벽이 생기게 된다. 결국 중소-중견-대기업으로의 성장이 막히는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이다. 주식시장 발전 저해하는 결과 초래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자본시장법은 약 2500개의 상장기업에 적용이 되지만, 상법은 100만개 이상의 비상장기업까지 적용된다”며 “상장회사의 86%가 중소·중견기업이고 경영권 분쟁 공시 기업의 90%가 중소·중견기업인데 상장 중소기업들은 시가총액이 작아 1200억 정도면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선량한 소액주주란 이름 아래 외국계 투기 자본이 모습을 감추고 접근하는 경우도 있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모든 주주 만족시킬 방안 쉽지 않고 일률적으로 규제하려면 부작용 커질 수 있다”며 “기업의 합병·분할 과정에서의 소액주주 피해 부작용이 우려되는 것이라면 상법보다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핀 포인트’ 접근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투자자 측 “상법 개정 없이 주주 손해 회복 방법 없어”
명한석 참여연대 실행위원은 “우리나라 상법에는 이사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충실히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일반 규정은 있는데 주주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한다는 일반 규정이 없는 상황”이라며 “제일 중요한 주주 보호장치가 우리나라에 없는 것이다. 이를 입법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도입 취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장기 투자자들 입장에서 보면 주주 보호 장치가 없고 투자하기 너무 어려운 환경인 셈이다.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윤태준 소액주주 행동 플랫폼 액트 연구소장은 “소액주주와 지배주주 간 이해관계의 방향성은 같다. 회사가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면 소액주주들은 회사 편이 될 것”이라며 재계에서 제기한 소송 남발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반박했다. 그는 “기업의 저력을 믿고 주식을 사는 것이다. 소액주주를 태클 걸려고 하는 사람처럼 보는 게 안타깝다”며 “일반 투자자들의 자금이 대규모로 투입된 순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이날 토론은 이 대표의 “잘 검토해보겠다”는 마무리 발언으로 종료됐다. 민주당은 당초 연내 상법 처리를 목표로 했지만, 재계와 투자자 측의 뚜렷한 입장차로 결론을 마련하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달 말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공청회를 열어 추가 의견 수렴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