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3년간 2조원을 투입, 연체 가능성이 큰 소상공인 25만명에 대한 채무 조정에 나서기로 했다. 올해 실시한 ‘소상공인 이자 캐시백 프로그램’(상생금융 시즌1)에 이은 상생금융 시즌2가 시작됐다. 은행권에서는 이러다가 상생금융이 정례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지난 2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간담회를 열고 은행권 소상공인 금융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간담회에는 김병환 금융위원장,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해 조용병 은행연합회장과 국내 20개 은행장이 참석했다. 참여 은행은 산업·수출입·IBK기업·NH농협·신한·우리·SC제일·하나·KB국민·한국씨티·수협·iM·부산·광주·제주·전북·경남은행과, 케이·카카오·토스뱅크 등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간담회에서 “은행권에서는 부담으로 느낄 수 있으나 성실한 상환이 이뤄져 연체나 부실가능성이 줄어드는 경우, 은행, 소상공인, 우리 경제 전반의 부채 리스크가 축소될 수 있다”면서 “소상공인들께서 하루 빨리, 많은 혜택을 받으실 수 있도록 신속한 집행을 당부드린다. 정부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발언했다.
이번 소상공인 금융지원 방안은 맞춤형 채무조정, 폐업자 지원, 상생 보증·대출, 컨설팅 등 네 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먼저 기존에 있던 소상공인 맞춤형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119 플러스’(plus) 지원 대상을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소상공인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폐업자에 대한 지원책도 마련했다. 빌린 돈을 제대로 갚고 있지만 사업을 정리하려는 사업자에게 남은 대출금을 최대 30년간 분할 상환할 수 있는데 잔액이 1억원 이내라면 대출금리가 평균 연 6%에서 3%대로 대폭 낮아진다. 아울러 소상공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주거래 은행에서 상권 분석, 금융·경영 지원 등 컨설팅과 지원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은행들은 연간 6000억~7000억원을 부담하게 된다. △맞춤형 채무조정 1210억원 △폐업자 지원 3150억원 △상생 보증·대출 2000억원씩이다. 이는 프로그램별 신청률을 20%대로 가정해 계산한 것으로, 신청률이 이보다 높으면 은행권 부담은 더 커진다.
이번 지원책은 지난해 12월 은행권이 발표한 상생금융 시즌1과 비슷한 듯 다르다. 시즌 1에서 은행권은 소상공인 이자 감면액 전액을 현금으로 환급해 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부채 탕감과 소상공인 성실 상환을 유도하는 지원책에 초점이 맞춰졌다. 상생금융 시즌1이 일회성 이벤트에 가까웠다면 시즌2는 지속가능성에 방점을 뒀다. 지원 규모도 다르다. 연 2조원 규모에서 연 6000~7000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은행권에서는 한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상생금융이 정례화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 돈잔치’, ‘은행의 종노릇’,‘ 은행 갑질’ 등 은행권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을 쏟아내며 상생금융을 촉발시켰다. 이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각 금융지주나 은행 등을 방문하면서 추가 지원안을 끌어낸 바 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등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은행들은 건전성 지표 모니터링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다. 또 은행권은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기업의 외화결제 및 외화대출 만기의 탄력적 조정을 비롯한 기업금융 확대를 주문하고 나서면서 이미 수출입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신용장 대금 결제일을 연장하는 등 지원책을 따로 내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상생금융 지원이 은행 입장에서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은행 자체적으로 ESG 차원에서 사회공헌활동을 적지 않은 규모로 해왔다”면서 “이러다가 상생금융이 자칫 정례화되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당국은 “정례화 계획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