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어수선한 탄핵 정국 속에서 올 1분기 전기요금을 동결한 가운데, 최근 환율 급등세로 에너지수입단가 상승에 대한 부담까지 안게 될 것으로 보여 부채에 대한 고민이 가중되고 있다.
4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한전은 올 1분기(1~3월분) 전기요금 결정 요소인 연료비조정단가를 지난 분기와 동일한 kWh(킬로와트시)당 5원으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 전력량요금, 기후환경요금, 연료비조정요금으로 구성되는데, 최근의 단기 에너지 가격 흐름을 반영하기 위한 연료비조정요금의 계산 기준이 되는 것이 매 분기에 앞서 결정되는 연료비조정단가다.
한전은 “정부로부터 한전의 재무상황과 연료비조정요금 미조정액이 상당한 점을 고려해 1분기 연료비조정단가는 kWh당 5원을 계속 적용할 것을 통보한다고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한전은 지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후로 발생한 국제 에너지가격 급등에도 국민 부담을 고려해 전기를 원가 밑으로 판매해오며 누적 적자 37조6906억원, 연결 총부채 202조9900억원(지난해 9월 말 기준)을 떠안고 있다.
김동철 한전 사장이 직접 나서서 전기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왔고, 이에 전력당국은 2023년 4분기와 지난해 4분기에 각각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실제로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 효과를 거뒀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전의 최근 4개 분기(2023년 4분기~2024년 3분기) 연결기준 ROE(자기자본이익률)는 10.16%로, 직전 4개 분기(2022년 4분기~2023년 3분기) -33.14% 대비 43.3%p 개선됐다. 영업이익 역시 지난해 3분기 연결기준 5조9457억원을 기록, 손실을 기록했던 전년(2023년) 동기 대비 12조3991억원 증가했다.
이에 2023년 5월 이후 쭉 동결돼 왔던 주택용 전기요금에 대한 인상 논의도 최근 들어 급물살을 타는 듯했으나, 12·3 비상계엄 여파로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직무정지되며 관련 논의가 사실상 후순위로 밀려났다. 이민재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초 3~4월 예상됐던 추가적인 전기요금 인상이 정치적 변수 발생으로 어려워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겨울철 난방 연료 수입이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에 환율마저 급등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30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73원을 기록하며 세계금융위기 이후 15년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뒤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1500원대가 ‘뉴노멀’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환율이 오르면 발전 및 난방 연료로 사용되는 LNG(액화천연가스) 등 에너지수입단가도 오르게 된다. 수입단가 상승은 발전단가 상승으로 이어지는데, 현 상황에서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못할 경우 한전의 비용부담이 또다시 가중되는 셈이다. 업계에선 환율이 달러당 10원 상승하면 한전의 연손실이 2400억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최근 국제 에너지 가격이 안정화 흐름으로 접어들면서 엔데믹 이후 동결 기조였던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에 대한 인상 논의가 재개되는 시점이었는데 정치적 변수와 환율 급등으로 다소 어수선한 상황”이라며 “현재 서민 경제의 부담이 무거운 것도 사실이지만, 한전의 대규모 적자는 단순히 재무부담을 넘어 재생에너지 확대 속 발전설비 확충을 저해하는 등 미래 세대에 더 큰 부담을 전가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전 측은 “국민께 약속드린 자구 노력을 철저하고 속도감 있게 이행하고 전기요금의 단계적 정상화와 더불어 전력구입비 절감 등 누적적자 해소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정부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김동철 사장은 지난 2일 신년사를 통해 “조기 재무 정상화를 위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자구 노력을 이행하고 요금 정상화를 추진해나가면서 원가에 기반한 요금 체계 확립과 전력시장 제도의 합리적 개편에도 힘을 쏟아 달라”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