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급격하게 늘어난 정책 대출로 은행 건전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금융위원회와 국토교통부가 정책대출 규모를 두고 의견 조율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금융위에 힘을 실어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디딤돌·버팀목 대출 180%↑⋯금감원장 “은행 수익성 우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14일 임원회의에서 “국내은행의 자체 재원 정책자금대출이 2022년 이후 180.8% 증가하는 등 가계대출 내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은행의 기회비용 등을 감안할 때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자산쏠림 리스크 및 건전성 악화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통계를 보면 지난해 은행권 주담대는 1년 전과 비슷한 수준인 52조1000억원 늘었다. 은행 자제 재원으로 나간 주담대는 31조6000억원 늘어난 반면 정책성 대출인 디딤돌·버팀목대출이 39조4000억원 증가해 은행 자체 주담대를 추월했다.
정책대출은 디딤돌·버팀목 대출 등 무주택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한 저금리 대출 상품이다. 은행이 정부를 대신해 저금리로 대출을 내주면 정부는 시중금리와 정책상품 간 금리 차이를 감안해 차후에 손실을 보전해준다. 다만 보전해주는 금리차에 상한선(일명 ’캡’)이 있다. 손실 전액을 보전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상한선은 상품별로 다르다. 디딤돌 대출 0.99%, 버팀목 전세대출 1.05%, 중소기업 취업청년 임차보증금 대출 2.09% 씩이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시장금리가 오르며 정책대출과 금리차가 벌어졌다. 대출이 증가할수록 은행이 감당해야 할 손실이 누적됐다. 때문에 정책대출 공급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게 이 원장 발언 요지다.
금융위 “어느정도 조절해야” vs 국토부 “변화 없어”
이는 금융위 시각과 같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죄는 와중에 국토부가 정책대출을 늘리면서 엇박자라는 지적을 받았다. 지난해 9월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4월 이후 전체적인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데 있어 정책자금의 비중이 높았던 것은 사실”이라고 발언했다. 반면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집을 살 생각이 없는 사람이 정책 대출이 공급됐다고 해서 집을 사서, 그게 원인이 돼서 집값을 끌어올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정책대출은 가급적 건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지난 7일 2025년 업무보고 관련 사전브리핑에서 정책대출에 대해 “주거 안정을 위해서 필요한 측면도 있지만, 또 너무 과해서 주택시장의 불안요소가 되지 않는 균형점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며 “국토부와 논의 중이고 의견이 상당부분 조율됐다. 국토부, 기재부, 한국은행과 협의를 마치면 어느 시점엔 발표를 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토부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정책대출은 투기 자금도 아니고 실수요자금이기 때문에 꾸준히 공급한다는 기존 입장 그대로”라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온도차를 보였다.
은행권 관계자는 “그동안 은행들은 정책대출 이차보전을 다 받지 못하는 문제를 겪고 있었다”면서 “이 원장 발언은 사실 은행 입장을 대변 해준 측면이 있다. 또 정책대출을 늘리려 하는 국토부와 달리, 정책대출을 줄여서라도 가계부채를 덜어내야 한다는 금융위에 좀 더 힘을 실어주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