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급이 사라진 자리, 평양 장마당이 채운다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배급이 사라진 자리, 평양 장마당이 채운다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기사승인 2025-02-06 13:00:11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북한의 시장, 특히 평양을 중심으로 한 장마당은 북한 경제의 축소판이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기능을 수행한다. 1990년대 중반 지방에서부터 장마당이 생겨났고, 시장은 점차 확대됐다. 현재는 자본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평양에 있는 시장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은 이제 시장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시스템이 됐다. 시장은 북한 주민들의 생명줄이며, 가장 활력이 넘치는 생존의 공간이다. 

1. 평양시장의 탄생과 역할

국가 배급 체계가 약화한 상황에서 시장은 주민들이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 생계와 경제 중심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단순히 물건을 거래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정보 교류와 네트워킹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사회 교류의 장 역할을 한다.

평양시는 구역마다 2개의 큰 시장, 동마다는 골목시장이 2~3개가 존재한다. 중구역에 있는 중구시장은 1, 2층으로 되어있다. 중앙당 간부와 무역회사 사장, 신흥 자본가 세력, 내각(성), 등 부유층이 소비자가 많아서 베이징 국제 열차를 통해 비싼 의류와 가전제품이 유통된다. 락랑구역에 있는 통일거리시장은 토성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어서 평양-원산, 평양-함흥, 평양-청진까지 버스가 운행한다. 동해안의 신선한 물고기가 공급되는 시장으로 유명하다. 평천시장은 차 부속품을 파는 시장으로 소문이 나 있으며, 인흥시장은 안상택거리가 있어서 일본상품이 많다. 대성시장은 김일성종합대학교, 평양외국어대학이 옆에 있어서 대학생 학용품이나 학생 유니폼 등을 판매하는 것이 특화되어 있다.

평양시는 자급자족 가능한 ‘도농통합형 도시를’ 추구하고 있다. 도시와 농촌의 경계선 지역에 있는 락랑시장, 칠골시장, 하당시장, 연못시장, 봉학시장, 송신시장에서는 새벽도매시장이 성대하게 열린다. 이곳에서 농촌 주민들이 키운 고구마, 감자, 옥수수, 잡곡, 야채, 과일 등 농토산물과 도시 상인들의 의류, 신발 등 생활필수품들이 교환된다.


2. 평양시장 내 유통 구조


평양시장에는 도시와 농어촌, 그리고 베이징 국제 열차를 통해 이송된 다양한 상품이 공급된다. 이를 통해 평양시 주민들의 식량 및 생활필수품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 국제 열차를 통한 물품 유통 : 외교관 가족의 생존 전략

북한의 외교관은 500달러를 한 번 받고 외국으로 나가면 이후에는 자력갱생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 베이징이나 심양에 나가 있는 외교관 가족들은 하루에 2번 다니는 평양-베이징 국제 열차를 이용하여 평양에 있는 친척을 내세워 의류 및 가전제품 도매 장사를 하고 있다.

실제 외교관 사모님은 베이징에 있는 의류매장을 두루 다니며 올해 평양에서 유행할 의류(중국 기성복)를 선정해 평양 친척에게 보낸다. 이 옷이 유행될 조짐이 보이면 중구시장, 통일시장, 보통강시장, 대성시장에 대량으로 공급한다. 

가전제품 즉 냉장고, 평면TV, 노트북, 컴퓨터, 집 전화기, 세탁기, 선풍기, 고급 신발, 오메가시계, 액세서리(반지, 목걸이), 믹서기, 주방 도구, 전기밥솥(쿠쿠 밥솥), 양말, 생활용품(화장품, 비누, 치약, 칫솔, 샴푸, 린스) 등 다양한 제품들이 국제 열차를 통하여 중국으로부터 들어온다.

의류와 가전제품은 평양과 주요 도시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고급품은 외화를 통해 거래되며, 평양 주민들 사이에서는 부와 지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 새벽 도매시장 : 자급자족이 가능한 도농통합형 도시 추구

새벽 4시부터 평양시 각 구역 시장 주변에서 농장원과 도시 상인들이 교류하는 새벽 도매시장이 열린다. 만경대구역의 칠골시장, 형제산구역의 하당시장, 서성구역의 연못시장, 평천구역의 봉학시장, 락랑구역의 토성 시외버스터미널 주변, 락랑시장, 사동구역의 송신시장은 도심지역과 농촌지역의 경계선에 있는 장마당으로 새벽 도매시장이 활성화된 곳이다. 이곳 새벽 도매시장에서는 농촌 지역의 농장원들이 텃밭에서 기른 옥수수, 조, 수수, 감자, 고구마와 같은 구황작물과 야채(배추, 무, 고추, 깨, 토마토, 오이 당근 등)를 가져와 공업품(의류)과 교환해 가기도 한다. 

락랑구역의 토성 새벽도매시장은 토성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곳이다. 시외버스가 평양-사리원, 해주, 개성, 원산, 함흥, 청진 등을 다니며 각 지역의 특산물을 유통한다. 이렇게 신선한 수산물과 농토산물이 모여든다. 물품들을 도매하기 위해서 토성 새벽 도매시장은 2~3만명이 모이는 대규모 도매시장이 열린다. 


● 수산물 유통 : 기업 냉동 창고 활용

북한 해안 어류 유통과정은 국가 주도의 중앙집권적 관리 체제와 시장 경제 요소가 혼합된 형태다. 북한 해안은 주요 어업 지역으로 풍부한 해양자원을 바탕으로 수산업이 활발히 이루어지지만, 유통과정에서 여러 제약이 존재한다. 교통 문제와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냉동시설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신선도 유지에 어려움이 따른다.

북한 서해안 지역의 온천, 남포, 태단, 과일, 장연, 룡연, 옹진, 강령, 벽성, 해주에서는 서해 멸치(까나리), 병어, 꽃게, 조기, 갈치, 가오리, 조개(대합), 미역/다시마/김과 같은 수산물이 풍부하다. 동해안 지역 청진, 김책, 함흥, 단천 등 주요 어업기지에서는 명태, 오징어, 임연수, 동해 멸치(까나리), 털게, 명태, 도루묵, 까막조개, 청어, 고등어, 게, 조개류, 미역, 다시마, 김 등 다양한 수산물이 있다.

해안에서 어획된 어류는 현장에서 바로 처리한다. 냉장 및 냉동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부분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소금에 절이는 염장이 이루어져 유통된다. 오징어나 명태와 같은 어종은 건조 형태로 가공된다. 일부 고부가가치 어종은 냉동 처리되지만, 냉동시설이 제한적이어서 대량 처리는 어렵다. 

평양시 중구역은 북한에서 유일하게 전기가 24시간 공급된다. 수산물 돈주들은 냉장고를 활용해 도매를 하며, 많은 양의 수산물을 처리할 경우에는 1, 2급 기업소를 활용하여 수산물 도매 장사를 하는 실정이다. 동해안에서 잡힌 오징어는 건조되어 중국으로 수출되기도 한다. 일부는 도매상인에 의해서 평성과 평양으로 유통, 부유층이 사용하는 합의제 식당에 공급되어 술안주로 사용된다.

3. 평양 지역 비공식 시장

북한에는 국가가 허용한 공식적인 장마당뿐만 아니라 비공식적으로 운영되는 다양한 형태의 시장이 존재한다. 이러한 비공식시장은 개인 주도하에 운영된다. 대표적으로 ‘골목시장’, ‘메뚜기시장’ 등이 있다. 이들 시장은 국가의 통제를 피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운영된다. 주민들의 생계를 위해서 합법적인 물품도 거래하지만, 국가에서 금지하는 한국 드라마, 한국산 제품, 매춘, 마약 거래 등도 이루어진다.

● 메뚜기시장과 골목시장

메뚜기시장과 골목시장은 주로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골목길이나 주택가에 있다. 이곳에서 주민들에게 먹거리나 생필품을 공급한다. 안전원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출근 전, 퇴근 후에 주로 활동한다. 보통 새벽 4시 30분부터 오전 7시 30분까지, 오후 6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운영하고 있다.

동마다 2~3개의 골목시장이 존재하며 이곳에서는 룡성어묵, 룡성순대, 돼지족발, 돼지고기, 닭백숙, 오리백숙, 꿩백숙, 오소리백숙, 토끼탕 등 고급 먹거리를 배달해 준다. 대중 먹거리로는 인조고기밥, 두부밥, 떡, 국수, 고구마, 감자, 옥수수 등 간식과 요기 거리를 판다. 공식 시장이 문을 닫은 상태에서 갑자기 집에 손님이 온다든지 아침 식사 재료를 준비하지 않을 경우에 식료품, 농토산물, 수산물을 구입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24시 편의점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 평양시장에서 금지된 품목

북한 당국은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품목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쌀이나 옥수수 같은 주요 곡물, 외국 서적, 한국 드라마 CD, USB나 SD카드 같은 전자기기, 매춘, 마약 등은 거래를 금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품목들은 메뚜기시장이나 골목시장에서 은밀히 거래되며, 단속을 피해 빠르게 이동하며 판매된다. 

공식적인 시장에서 금지된 비법이나 불법 품목과 행위를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산 제품 (드라마 CD, 쿠쿠 밥솥, 화장품, 의류, 신발, 생활용품 등)

▶달러 판매 및 교환하는 돈을 장사하는 행위

▶군복을 판매

▶의약품을 판매

▶휴대전화를 판매

▶술 만드는 행위 및 술을 판매하는 행위

▶소고기를 판매하는 행위 (소는 먹는 대상이 아닌 일하는 동물)

▶미니스커트, 쫄바지, 나팔바지 판매

▶영어가 적혀있는 티셔츠를 판매

▶골프 및 등산 모자를 판매

▶머리를 노랗게, 빨갛게 물들이는 행위

▶마약을 판매하는 행위

▶매춘을 하는 행위

▶금, 은, 동, 광석을 파는 행위

● 가내수공업과 자영업

북한의 수공업은 주로 개인 가내수공업과 자영업 형태로 이루어지며, 시장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개인이 주택 내 설비를 활용해 생산하는 방식으로, 식품, 의류, 신발, 목재 가공품, 악기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특히 가내수공업은 국영 생산을 능가하는 경우도 많다. 여성들이 재봉 기술 등을 활용해 저고리 치마, 액세서리 등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한다. 이는 북한 경제의 민생 안정에 중요한 요소로 평가된다.

4. 평양시장 문화와 사회적 영향

시장은 북한 사회에서 단순히 경제 활동의 공간을 넘어 독특한 문화적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 쇼핑과 음식

북한 주민들에게는 시장은 친한 친구, 지인들과 모여 소소한 자유를 만끽하는 만남의 장소다. 이들은 함께 많은 물품을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술도 한잔하며 정다운 이야기를 나눈다. 

음식 매대에서는 국수, 떡, 만두 등 저렴하고 간단한 음식들을 판매한다. 이는 북한 주민들에게 작은 일상의 즐거움과 휴식을 제공한다. 특히 배급제의 한계를 넘어 개인의 선택과 취향에 맞는 음식을 구매할 수 있는 자유로움은 주민들에게 중요한 의미다. 

● 정보 교류

시장은 북한 사회의 비공식적인 정보가 유통되는 핵심 공간이다. 외부 세계의 소식, 정치적 변화, 해외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교환된다. 한국 드라마나 외국 영화에 대한 소문과 정보가 빠르게 퍼지며, 이를 통해 주민들은 새로운 문화와 세계관을 접하게 된다. 

▶아랫동네 드라마 태양의 후예, 도깨비 봤어

▶한국말이 나오는 쿠쿠 밥솥이 밥맛이 좋대

▶가전제품은 아랫동네가 일본을 꺾고 세계 1위라고 하더라고

▶아랫동네 샴푸, 린스는 꽃향기가 난다는데

▶아랫동네는 대통령도 끌어내려 감옥을 보낸다는데

▶시장 의류 매대 아주머니 아들이 러시아 파병에 끌려갔다는 소문이 있더라고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가 다시 되었는데 우리에게 이익이 될까?

공식 매체로는 얻기 어려운 다양한 정보들이 장마당을 통해 유통되는 것이다.

● 장마당 협잡꾼과 지갑 도둑

활발한 시장 활동 속에는 불가피하게 부정적인 요소들도 존재한다. 협잡꾼(사기꾼)들은 가짜 상품을 판매하거나 가격을 속이는 방식으로 불법적인 이익을 추구한다. 또한 평양에서는 일요일 날에 하루 쉬기 때문에 장마당에 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이때 혼잡한 시장 환경에서 지갑 도둑과 소매치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한다. 소매치기는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 아기를 업고 가는 사람(운반자), 혼란스럽게 바람을 잡는 사람(바람잡이), 실제로 면도칼로 지갑이나 가방을 잘라서 돈을 빼앗는 사람(훔치는 사람) 등이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장마당은 북한 주민들의 생존과 소통의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5. 평양시장은 생명수가 흐르는 자유롭고, 풍요로운 공간

북한의 시장은 단순히 경제 활동의 공간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삶과 문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국가 배급 체계가 무너진 뒤 등장한 이 공식 및 비공식 시장들은 주민들에게 생존의 돌파구를 제공했다. 또 동시에 북한 경제에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평양 시장은 북한 주민들에게 단순한 시장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생존을 위한 생명수가 흐르는 풍요로운 공간이며, 국가의 통제 속에서도 자유로운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농촌과 도시의 산물이 교류하고, 외부 세계의 물건이 스며들며, 주민들의 삶에 활기가 생긴다.

평양 시장은 희망과 생존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먹고 살길을 찾고, 정보를 나누며, 작은 자유를 누린다. 가장 활기찬 에너지가 넘치는 이 공간은 북한 주민들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자, 그들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과도 같다.

평양 시장은 오늘도 변화와 희망 속에서 북한 주민들의 삶을 이어가게 하는 중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곽인옥 교수
inokkwak@hanmail.net
곽인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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