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력·전선업계가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증가 등에 따른 ‘슈퍼사이클’을 타고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 트럼프 2기 체제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美 전력시장 진출 활로는 안정적일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한전선, LS전선, HD현대일렉트릭 등 국내 주요 전력·전선기업들은 지난해 일제히 실적 퀀텀점프(Quantum Jump)를 달성했다.
대한전선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3조2820억원, 영업이익 1146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15.4%, 43.6% 증가했다. 연간 매출이 3조원을 돌파한 것은 지난 2011년 이후 13년 만의 성과다. 영업이익 역시 2007년 이후 처음으로 1100억원대를 돌파했다.
지난해 북미, 유럽, 아시아 등에서 총 3조7000억원 규모의 신규 프로젝트를 수주해 2023년(1조8000억원) 대비 2배 이상의 성과를 달성했다. 연말 기준 수주 잔고는 2조8000억원으로 전년보다 63% 증가했다.
LS전선은 지난해 연 매출 6조7660억원, 영업이익 2747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환율 상승으로 인한 환파생 손실 등 영업외비용 증가로 당기순이익이 감소했지만, 그럼에도 전년 대비 매출 8.8%, 영업이익 18.2%가 증가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LS전선의 수주잔고는 5조69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6% 증가하며 일감을 넉넉히 비축했다. LS전선의 호조에 힘입어 자회사 LS에코에너지 역시 지난해 매출 8690억원, 영업이익 448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18.9%, 51.8% 반등했다. 특히 당기순이익이 353억원으로 무려 725.5%나 증가해 수익성을 제고했다.
전력기기 사업을 영위하는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해 연 매출 3조3223억원, 영업이익 669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22.9%, 112.2% 상승했다. 특히 북미 시장의 견조한 수요에 따라 전력기기 매출은 전년 대비 50.6% 증가하며 성장세를 이끌었다. 연간 수주 금액은 38억1600만달러를 기록하며, 목표인 37억4300만달러를 초과 달성했다. 수주 잔고는 전년 대비 28.8% 증가한 55억41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전력·전선업계가 이처럼 호황을 맞게 된 것은 AI 발전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을 비롯해 관련 수요가 폭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IEA(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은 지난 2022년 460TWh(테라와트시)에서 오는 2026년 1050TWh로 2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는 지난달 출범 직후 향후 4년간 5000억달러(약 730조원)를 투자해 대규모 데이터센터·발전소 등을 짓는 AI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를 가동했으며,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민간기업들 역시 막대한 비용을 들여 AI 인프라 선점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전력 인프라 교체 시기가 도래한 점도 국내 기업의 수요 증대 요인 중 하나다. 2022년 기준 미국 송전선로의 70% 이상이 25년이 넘은 노후 인프라로, 국내 기업이 보유한 전선·변압기 등 수요가 향후 수십 년간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업계는 이러한 슈퍼사이클을 타고 시장점유율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울산 사업장 내 기존 부지를 활용한 생산공장 신축 및 미국 알라바마 법인 내 제2공장 건립 등을 통해 765kV(킬로볼트)급 초고압변압기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765kV는 현재 미국에서 취급하는 최대 전압의 사양이다.
HD현대일렉트릭 관계자는 “생산능력 확충을 통해 변압기 수요 증가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동시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에도 선제적으로 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전선 역시 수주잔고를 늘리며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노후 전력망 교체 등의 전력 인프라 투자가 본격화해 올해도 우호적인 시장 환경이 예상된다”면서 “글로벌 현지 법인과 지사를 활용한 신규 시장 개척과 제품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해 실적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