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산 호황기를 타고 지난해 1조7000억원대에 달하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올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국내 자본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인 3조6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하기로 하면서 시장이 크게 반응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유상증자 규모가 큰 만큼 중점심사 하겠다는 입장이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전날 이사회를 열고 3조6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다고 공시했다. 1조2000억원은 시설자금으로, 2조4000억원은 타법인 증권 취득 자금으로 쓸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대규모 해외 투자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양호한 재무 전망을 고려했을 때 3조6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위해 유상증자를 택한 것이 아쉽다는 반응이 나왔다.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에 이어 올해와 내년에도 각각 2조8000억원, 3조5000억원대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증권가는 보고 있다. 향후 2년간 6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것이다. 노무라 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전날 사측이 연 긴급 기업설명(IR) 행사에서 “방산 회사로 좋은 신용등급을 갖고 있는데 (주주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사측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조 단위 영업이익 시대를 맞았지만, 세계 지정학적 대변동 속에서 유럽, 미국, 중동, 호주 등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인 전략 투자를 단행하려면 투자 실탄을 최대한 조기에 확보할 필요성이 있어 이번 유상증자 결정을 단행했다는 입장이다.
한상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IR 담당 임원(전무)은 전날 설명회에서 “재무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방법도 있지만, 지금 업황이 그렇게 녹록지 않고, 오히려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선 이런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주주들께 양해를 구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대형 투자를 단행할 때 자금을 확보를 하는 수단은 내부 보유 현금 활용부터 금융권 차입, 회사채 발행, 증자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이 중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들의 보유한 주식 가치를 희석해 직·간접적인 손실을 끼칠 가능성이 커 악재로 받아들여져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전날 유상증자 발표 직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시간 외 시장에서 하한가까지 밀린 데 이어 21일 장중 최대 15.79% 급락했다.
일각에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지난 13일 1조3000억원의 자금을 들여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높은 기업(한화임팩트파트너스 5.0%, 한화에너지 2.3%)들이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 7.3%를 인수한지 불과 일주일 만에 투자 명분의 초대형 유상증자에 나선 것을 두고 총수 일가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는다.
한화그룹 계열 4개사는 2023년 5월 2조원 규모의 대우조선 유상증자에 참여해 대우조선해양 지분 49.3%를 확보한 바 있다. 이번 매입으로 계열사별로 나뉜 지분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모으는 효과가 발생,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한화오션 보유 지분율은 연결기준 기존 34.7%에서 42.0%로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김동관 부회장의 방산 부문 지배력이 강화됐다는 평가다. 아울러 이 거래를 통해 한화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높은 한화임팩트파트너스와 한화에너지는 1조3000억원의 한화오션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게 됐다.
한화에너지는 김동관 부회장을 포함한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함께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임팩트도 한화에너지가 다시 약 5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높다.
김동관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후계 구도 정리에 그룹 캐시카우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자금을 투입하고,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투입됐던 총수 일가 회사의 1조원대 자금의 엑시트까지 마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이다.
한편, 금감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 계획과 관련해 “유상증자 규모가 크고 지난 1999년 이후 첫 유상증자인 점을 고려해 중점심사 대상으로 심사할 계획”이라며 “투자 판단에 필요한 중요 정보의 충실한 기재 여부 등을 면밀히 살피는 한편, 신속한 심사를 통해 시장 불확실성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