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국의 탄소중립 정책이 인센티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의 강한 규제 성향으로 오히려 역효과가 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28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산업 성장지향형 탄소중립 정책 세미나’에서 “제조업 중심의 우리나라 특성상 ‘산업 GX(Green Transformation, 성장지향형 그린전환) 지원법’ 마련은 차기 정부에서 그 어떤 산업 정책보다 중요하다”며 “탄소중립 정책이 목표 중심에서 실행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GX 전략은 탄소중립 정책의 초점을 규제·의무 대신 지원·자발적 참여에 맞춰 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서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내용이 골자다. 그간 국내 산업계는 대규모 지원책이 부족한 상황에서 배출권거래제(ETS) 강화와 더불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ETS를 연동한 각종 규제로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
실제로 한국경제인협회가 시장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기준 1000대 제조기업을 대상(120개사 응답)으로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산업계 의견을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64.2%가 국내 탄소중립 정책이 인센티브 요인보다 규제 요인이 더 많은 것으로 평가했다. 반면 응답기업의 4.2%만이 현행 탄소중립 정책에서 인센티브 요인을 체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 교수는 “미국의 경우 2020년 이후 6가지 신산업정책을 추진하며 반도체, 신에너지 인프라, 공급망 등 미래기술을 총망라한 R&D(연구개발)를 지원해 왔고, 특히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등을 통해 탄소중립 목표를 제시하면서도 3750억달러 규모의 기업 지원책을 추진해 왔다”며 “타 국가 입장에선 최근 미국의 상호관세 등 여파에 따라 자국 산업 보호 및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GX 전략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 교수는 독일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그는 “독일의 경우 재생에너지 50%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지만 한국 대비 전기요금이 3배에 달하는 등 비용을 고려하지 못했다”며 “그사이 다른 국가에 공급망 등 밸류체인까지 빼앗기면서 3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역시 GX 정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시절이었던 2021년 ‘탄소중립 산업 대전환 비전과 전략’을, 윤석열 대통령 임기 시절이었던 지난해에는 ‘신산업정책 2.0’을 통해 GX 전략을 추진했다.

조 교수는 “정권을 막론하고 그동안 우리나라의 GX 정책은 △현실을 무시한 과도한 목표 제시 △재원 마련과 비용에 대한 고려 미비 △산업계 준비 및 이해도의 절대적 부족 △정책적 일관성 부족 △산업별·공정별 맞춤형 전략 부재 등 현실성이 떨어진 정치적 구호에 그쳤고, 그러는 사이 중국의 초격차 전략에 이미 추월당했다”며 “어떤 산업에 어느 정도의 재원이 들어가는지 업계와 소통하면서 더욱 명확한 연계 및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보면 전력부문의 45.9% 감축은 전력설비를 반으로 줄이거나 발전량을 반으로 줄여야 가능하고, 국제감축 및 CCUS(탄소포집및저장) 등은 고육지책으로 넣어놓는 등 전반적으로 비현실적”이라며 “그나마 미국이 파리협약을 탈퇴하고, EU가 CBAM(탄소국경조정제도)를 연기하는 등 우리에게 있어 시간이 다소 확보된 만큼 탄소중립 정책을 중장기 지원 형태로 바라보면서 금융확대, 친환경 시장 조성 등 인센티브 중심으로 전환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현숙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신무역전략실장은 한국과 산업 구조가 비슷하면서도 GX 추진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들며 GX 중요성을 역설했다.
장 실장은 “일본은 글로벌 이산화탄소 배출 순위가 우리보다 5계단이 높은 5위이지만, 자국 기업의 한계 배출 저감 비용이 세계 최고 수준이기에 추가적인 탈탄소화 대책(규제)이 성장에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판단하고 2023년부터 GX 정책을 본격화했다”며 “특히 ‘GX 리그’를 창설해 일본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GX 추진전략을 수립하는 기업 그룹을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GX 실현을 위해 △규제·지원 일체형 투자 촉진책 △탄소가격제에 의한 GX투자선행 인센티브 △각종 금융기법의 활용 및 구체화 △국제 전개 전략을 10년 로드맵으로 수립하고, 철강·화학·전력 등 각 산업별 로드맵까지 수립해 구체화했다. 향후 10년간 150조엔(약 1426조원)이 넘는 국채를 투자할 예정이다.
장 실장은 “우리나라와 달리 자발적 성격이 매우 강해 ‘실제 탄소중립의 효과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라는 우려가 나올 수 있지만, 정부가 투자 유인책 및 인프라를 제공하고 민간이 주도하는 형태를 조성해 시행 10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기준 747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며 “일본은 탄소중립과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을 철저하게 경제성장과 연계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실장은 이어 “일본은 산업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경제산업성 주도하에 이러한 제도를 운영해가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에도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여러 기관이 있지만 탄소중립 정책을 어느 기관이 이끄는 지도 굉장히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