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도쿄도에서 열린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은 대만을 9대 0으로 꺾었다. 7회 10점차 이상인 대회 콜드게임 규정을 감안할 때 상대를 콜드게임의 치욕 일보직전까지 밀어넣었던 완승이다. 말 그대로 ‘압도적인 기량차’로 대만을 꺾은 한국팀은 7일 일본과의 대결은 물론 본선 진출 이후까지 선전을 기대할 수 있는 원동력을 발견한 경기였다.
◇상하위 안 가리고 뻥뻥= 타선에선 선발 출장한 9명 가운데 8명이 안타를 때려내는 호쾌한 타격을 뿜어냈다. 1회말 터진 이진영(LG)의 만루홈런은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일본 대표팀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의 간담을 서늘케 할 만했다. 7번 타순에 포진한 이진영의 그랜드슬램은 한국이 추신수(클리블랜드)-김태균(한화)-이대호(롯데)로 이어지는 클린업트리오에 의존할 것이라던 당초 예상을 뒤엎는 장쾌한 한 방이었다. 이 홈런과 뒤이어 터진 박경완(SK)의 펜스 직격 안타는 한국 타선을 쉬어갈 곳 없는 꽉짜여진 타선으로 변화시켰다. 이종욱(두산)은 볼넷으로 출루해 끊임없이 상대 투수를 괴롭혀 투구 밸런스를 무너뜨렸고, 정근우(SK)도 기회를 중심타선과 연결시키는 본연의 임무는 물론 6회말 쐐기 투런 홈런을 터뜨리며 활약을 예고했다.
추신수를 6번에 배치한 전략에 따라 3번에 기용된 김현수(두산)는 2루타를 포함해 4타수 2안타 1볼넷을 기록하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해 팬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내일은 내가 쏜다=김현수-김태균-이대호로 구성된 클린업트리오는 이날 터진 9점 가운데 3점을 뽑아내며 체면치레에 성공했다. 김태균이 선제 2타점 적시타를 날렸고, 이대호도 5회말 김현수의 득점과 연결된 내야안타를 때렸다. 하지만 더 큰 성과는 중심타선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태균은 1회말 무사 만루에 타석에 들어서 주자를 불러들이는 4번 타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3-유간을 꿰뚫는 총알같은 타구로 기선을 제압했다. 이후 2차례 볼넷을 골라내며 물오른 선구안을 과시했고, 6회말에는 폴대를 살짝 빗겨나가는 큼지막한 파울 타구를 날려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6회말 타격은 의식적으로 장타를 노리고 휘두른 스윙이라 김태균의 타격감이 본 궤도에 올랐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평가전 내내 화끈한 타격을 보여주지 못했던 이대호는 7회초 첫 타자로 나서 중견수 뒤쪽 담장을 직접 맞히는 커다란 2루타를 날려 기대를 높였다. 약간만 떴어도 홈런으로 연결될 뻔한 대형 타구였다.
실전 감각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냈던 추신수도 이날 5회초 안타를 뽑아내며 다음 경기에 더 좋은 모습을 예고했다. 첫 타석에서 볼넷을 골라 출루하며 선구안을 확인시켰고, 흐트러지지 않는 타격 자세는 상대 배터리를 괴롭히기에 충분했다.
◇구멍은 없었다= 이승엽(요미우리), 김동주(두산), 박진만(삼성) 등 1회 WBC에서 내야 수비진을 이뤘던 베테랑들이 대거 빠져 내야 수비가 불안 요소로 꼽혔지만 이날 경기에선 이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특히 박진만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꾼 박기혁은 사령탑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한국 내야진은 무려 5개의 병살타를 만들어내며 대만 타선에 굴욕감을 안겼다. 류현진은 1회초 뜬 번트 타구를 잡아 더블 아웃을 잡아내고 3회에는 투수 앞 땅볼을 병살로 연결시켰다. 이어 던진 봉중근도 6회초 투수 땅볼을 병살타로 연결시켜 갈채를 받았다. 특히 봉중근은 교체되자마자 특유의 ‘번개 견제구’로 1루 주자를 횡사시켜 대만의 기를 꺾었다.
안정된 수비와 화끈한 타격이 조화를 이룬 대표팀은 7일 오후 7시30분 도쿄돔에서 마쓰자카를 내세운 일본 대표팀과 본선 직행을 다툰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선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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