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바뀐 경찰 “장자연 리스트 없다”…외압 작용했나?

말 바뀐 경찰 “장자연 리스트 없다”…외압 작용했나?

기사승인 2009-03-19 12:27:01

[쿠키 연예] ‘장자연 리스트’가 갈수록 미궁에 빠지고 있다.

故 장자연의 자필 문서에는 작품 출연을 빌미로 고인에게 성 상납, 술시중 등을 강요해 인격적 모독을 준 내용이 기재돼 있다고 알려져 왔다. 또 이를 종용한 드라마 감독 및 제작사 간부, 언론사 임원 및 관계자, 대기업 간부 등의 실명이 기재돼 있다고 보도돼 파문을 몰고 왔다.

사건을 수사 중인 분당경찰서도 “자필 추정 문서가 사실로 확인되면 리스트에 거론된 인사들을 조사할 예정”이라며 “혐의를 발견할 시에는 사법처리도 불사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도 높은 발언을 했다.

일명 ‘장자연 문건’은 유명세를 얻고 싶은 신인 배우들의 약점을 악용, 일종의 관행처럼 행해지고 있는 연예 관계자들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장자연 리스트’의 실상을 접한 국민들은 분개했으며 공정하고 정확한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힐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런데 19일 오전 경찰의 말이 갑자기 바뀌었다.

19일 오전 열린 브리핑에서 “(장자연) 리스트는 없다”며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이어 “전 매니저인 유 모 씨 진술에 따르면 문건은 총 7장으로 되어 있는데 KBS로부터 제출받은 4장에는 리스트가 없었다”며 “나머지 3장 중에 (리스트) 내용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현재 우리에게는 (리스트가) 없다”고 말했다.

KBS에서 제출한 4장의 문서에 당시 상황을 묘사한 내용과 몇몇 이름이 거론된 걸로 알고 있다고 묻자 “KBS가 제출한 문건에 적힌 이름은 리스트가 아닌 다른 내용이라고 판단했다”며 “당초 리스트가 있다고 얘기한 것은 관계자 및 추정 가능한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유족이 문서 내용과 관련된 4명을 고소한 것과 관련해 어떻게 수사할 것이냐고 묻자 “유족이 진술한 바로는 주변인물 수사를 통해 사실을 수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답했다. 유족의 증언을 토대로 문건에 거론된 인물을 수사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자 입을 닫았다.

오 형사과장은 기자들의 질문을 회피한 채 부랴부랴 브리핑 현장을 빠져나갔다. 의문을 풀고자 수십 명의 취재진이 그의 뒤를 따라 나섰고 현장은 순식간에 뒤엉켰다. 자칫하면 사고가 발생할 정도로 아찔한 상황이 여러 번 연출됐으나 오 형사과장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180도 바뀐 경찰의 말과 입장 변화에 대해 고인에게 성 상납 및 술시중을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유명 인사들이 경찰에 압력을 가한 것이 아니겠냐며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경찰만이 아니다. 고인의 전 매니저이나 호야스포테인먼트 유장호 대표도 18일 오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문서 및 리스트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문서는 고인이 스스로 작성한 것” “고인은 부당함 때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 등 기존에 밝혀진 사항을 되풀이하는데 그쳤으며 6분 만에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MBC 시사 프로그램 ‘100분 토론’도 19일 방송에서 故 장자연 자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었다. 하지만 함께 토론할 연예인 패널 섭외가 어려워 결국 무산됐다.

문건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당사자도, 경찰도, 연예계도 성 상납, 술시중 등 다소 민감한 사항에 대해 입을 벌리지 않겠다며 ‘몸을 사리고’ 있다. 이렇게 될 것을 고인은 알았던 것일까. 고인은 작은 힘으로 거대한 권력 사회에 맞설 수 없다는 듯, 우리 사회가 나 몰라라 하는 동안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의 외침을 남기고 죽음을 선택했다.

그는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에 ‘제2의 장자연’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엄하다. 병든 연예계와 맞서 싸워줄 누구도 없고, 생생하게 증언해줄 그는 죽고 없다. 정확하고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모든 사실을 규명,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 ‘내일’을 기대하는 것은 헛된 희망일까. 딸을 두고, 누나와 언니를 둔 모든 사람의 관심과 촉구가 절실하다. 성남=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김은주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