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는 인문학 열공중

CEO는 인문학 열공중

기사승인 2009-04-20 17:38:01
[쿠키 경제]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맹자를 읽고 칸트를 논하며 몽골 제국의 흥망을 공부한다. 언뜻 한가한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학문의 근본에서 통찰력과 창의력을 찾으려는 절박한 노력이다. 인문학에 위기해법이 있다는 인식에서다.

모든 제품과 서비스가 평준화되가면서 케케묵은 인문학이 차별화 발상의 원천으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아 각 기업들이 위기돌파의 수단으로 통섭(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합 등 이종학문간 융합)형 인재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포스코는 다음달 13일부터 임원과 부·실장급 이상 200여명을 대상으로‘수요 인문학 강좌’를 시행한다고 20일 밝혔다. 경영진의 평생학습 프로그램 ‘토요학습’에서 확장된 강좌로 역사, 문학, 고고학 등을 폭넓게 다룰 예정이다. 서울사무소와 포항, 광양에서 동시에 영상강좌로 진행되며 첫번째 강의 주제는 ‘철학과 경영의 접목’이다.

‘굴뚝 기업’ 포스코의 인문학 바람은 정준양 회장의‘통섭(자연과학과 인문학 지식의 통합)형 인재관’에서 비롯됐다. 정 회장은 지난 14일 서울대 대학원 특별강연에서 “대학 시절 가난하게 공부한 탓에 다양한 책을 충분히 못 읽어 사회 생활하면서 안목이 좁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문과와 이과 통섭형 인재를 양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CEO들은 지난 8일 수요 사장단협의회에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를 초청해 ‘몽골 제국의 세계 평정 비법’에 관한 강연을 들었다. 김 교수는 몽골이 낮은 인구와 경제력, 문화수준에도 불구하고 ‘팍스 몽골리카’를 이뤄낸 과정을 인문학자의 관점으로 설명했다. 삼성 관계자는 “강의는 몽골 제국이 현재의 비즈니스에 시사하는 바를 밝히지 않고 사장들 각자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으로 남겨뒀다”고 말했다.

대학·기관이 운영하는 최고경영자 과정에서도 인문학이 인기다. 서울대 인문대가 지난달 3일부터 시작한 4기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Ad Fontes Program·AFP)’에는 임형규 삼성전자 사장, 김광현 코스콤 사장, 김치형 SK가스 사장, 염용운 동양매직 사장, 하성민 SK텔레콤 MNO비즈 사장 등이 참여했다. 2007년 개설된 AFP는 고대 무협소설을 포함한 동서양 고전을 다루는 6개월 교육 과정이다.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 김낙회 제일기획 사장, 이철우 롯데쇼핑 사장, 이건영 빙그레 사장 등이 AFP를 수료했다.

CEO들의 인문학 공부방은 AFP 외에도 많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인문학 조찬 강좌 ‘메디치21’에는 중견·중소기업 대표들을 비롯한 500여명이 매월 모인다. 한국능률협회도 ‘지혜의 향연’이라는 인문·예술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12주 과정의 ‘동양고전 오디세이’를 시작했다.

서울대 인문대 학장 시절 AFP를 개설한 이태진 명예교수는 “CEO들이 인문학을 찾는 것은 지적 허영이 아니라 기업을 경영하고 사람을 이끌어가는데 인문학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천지우 강준구 기자
mogul@kmib.co.kr
천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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