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구가 인문학 강의하는 까닭은…

자치구가 인문학 강의하는 까닭은…

기사승인 2009-05-12 17:46:01
[쿠키 사회] 주택가에 인문학 바람이 불고 있다.

동서양의 고전과 역사, 철학 등을 배우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서울 시내 자치구가 여는 인문학 강좌가 인기다.

지난 11일 오후 7시 상암동 주민자치센터. 평일 저녁인데도 30명의 수강생으로 강의실이 가득 찼다. 30대 직장인부터 주부, 머리칼이 희끗한 어르신까지 면면이 각양각색이다. 이날 수업의 주제는 ‘신(神)을 묻는 그대에게’. 지난달 27일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열리는 마포구청의 열린강좌 ‘서양철학의 지혜’ 강의 중 하나다.

수강생들은 2시간 내내 진지했다. 강사인 표정훈 출판평론가의 말을 노트에 적거나 고개를 끄덕거리며 강의에 집중했다. ‘살기 바쁜데 신이 무슨 소용이냐’ ‘신이 있느냐’는 문답도 오갔다.

언뜻 한가해 보이는 강의지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해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가다듬는 시간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지난해 닥친 금융위기로 허우적거리고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인문학 강좌를 들으며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 삶의 변화를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포구청 평생교육팀도 인문학 강좌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이 뜨거워 놀랐다. 지난해 8월 서교동 주민센터에서 처음 시작해 12월에 상암동, 도화동, 서강동으로 강좌를 늘렸고 이달부터는 지역 내 5개동 전체에서 인문학을 강의한다. 건강, 교육 등 숱한 실용 강좌 틈바구니에서 인문학 강좌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구로구청도 13일부터 ‘동양고전을 통해 본 인문학’을 12주 과정으로 시작한다. 접수 4일 만에 모집인원 80명이 모두 찼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신의 삶에 대한 주인의식’ 등이 강좌 제목이다. 지난 3월 강동구청에서 열린 ‘희망강동 인문학강좌’도 인기를 모았다. 저소득층에 한해 신청을 받기로 했다가 ‘수강하고 싶다’는 지역 주민들이 많아 모집인원을 늘렸다고 한다.

평범한 주민들이 인문학을 찾는 이유가 뭘까. 성공회대 고병헌 교양학부 교수는 “열심히 살아도 달라지는 게 없는 현실 속에서 인문학이 돌파구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경기침체로 삶의 공허감이 어느 때보다 커진 요즘 인문학에서 ‘길’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분석했다. 최근 인문학에서 위기 해법을 찾는 최고경영자(CEO)들이 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고 교수는 “인문학을 처음 접한 소외계층일수록 삶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뀐다”고 말했다. 그는 “밥 먹고 사는게 전부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
백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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