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박철민 “절절한 멜로 꿈꾸며 뱃살관리”

[쿠키人터뷰] 박철민 “절절한 멜로 꿈꾸며 뱃살관리”

기사승인 2009-07-10 11:38:01

"[쿠키 연예] 밋밋한 캐릭터도 그의 입김이 닿으면 생동감 있게 살아난다. 영화 ‘아부지’(감독 배해성)에서 엄한 아버지(전무송)의 아들 기수를 이어주는 담임선생님 구봉달. 영화는 구봉달로 인해, 아니 구봉달을 맛깔나게 연기한 박철민(42)으로 인해 한층 생기를 띤다.

넉넉한 품을 지닌 인자한 선생님인 동시에 쾌활한 소년 같은 정감어린 연기로 관객의 감동시키는 배우 박철민. 관객의 가슴을 울린 이유는 그의 ‘구봉달 레시피’에 있었다.

“겉으로는 위엄 있어 보이나 어딘지 모르게 모자라고 어설프죠. 눈치도 없고 약삭빠르지 못하지만 맑고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입니다.”

‘아부지’ 촬영이 끝난 뒤 아버지 떠올라

영화 ‘아부지’의 원제목은 ‘분교 이야기’였단다. 박철민은 제목을 ‘아부지’로 바꾼 이후 부쩍 자신의 엄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부친도 영화 속 아버지의 모습처럼 무뚝뚝하고 멀고 크게만 느껴졌죠. 어렸을 때에는 ‘출장을 오래 가셨으면…’하고 생각할 정도로요(웃음). 지금은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만큼 가까워졌습니다.”

그는 “전무송 선배가 맡은 아버지 캐릭터가 엄친의 예전 모습과 비슷하다”면서 “그래서인지 더욱 살갑게 느껴졌다”고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또 평소 존경해오던 대 선배의 사실감 넘치는 연기를 숨죽이며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 이번 작업의 큰 보람이었다고 털어놨다.

“예전부터 동경의 대상이었는데 같은 작품에서 만나게 돼 ‘가문의 영광’입니다. 옆에 계신 것만으로도, 그 카리스마와 존재감만으로도 힘을 얻으면서 촬영했습니다.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존재라 여겼는데 함께 호흡해 보니 인간미가 넘치시는 것도 새로 발견하게 돼 더욱 좋았고요.”

필름 값 하는 배우 박철민

총 5억 원을 들인 저예산 영화 ‘아부지’를 촬영하면서 필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는 박철민. 규모가 작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편안함’보다 ‘불편함’을 더 많이 느꼈을 테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영화 시장의 어려움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양한 장르와 기발한 내용을 가지고 관객과 만나야 하는데 경기가 어렵다 보니 투자 및 제작이 쉽지 않아요. 그래서 관객 몰이에 성공했던 장르나 유행 코드를 다시 선호하게 되는 거죠. 이로 인해 한국영화 발전이 더디고 내용도 단조로워지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거구요. 영화 제작자 및 투자자들이 조금만 더 용기를 내고, 발상의 전환을 꾀하면 적은 돈으로도 질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다양한 영화를 외면하지 않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관객 분들이 있다는 겁니다.”

박철민은 ‘아부지’가 저예산 영화이지만 많은 관객에게 잔잔한 울림을 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덧붙여 배 감독과 촬영하면서 겪게 된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전했다. 리허설을 많이 하되 촬영은 단 번에 끝내는 배 감독에게 박철민은 크랭크인 이틀 만에 ‘OK 감독’이라는 별명을 붙여 드렸다. 그런데 한 번은 도저히 OK컷으로 용인하고 싶지 않은, 박철민 자신의 부족함이 아쉬운 순간이 발생했다. 그는 감독에게 재촬영을 요청했다. 연기 좋았으니 걱정 말라던 감독은 박철민의 호소에 재촬영을 허했다.

“그래, 그럼 이틀 후에 다시 찍어요.”
“감독님, 무슨 말씀이세요. 여기 세팅 다 돼 있는데, 현장 준비 돼 있을 때 찍어야지요.”

감독은 먼 산을 바라보며 자리를 떴다. 촬영감독이 대신 설명에 나섰는데, 필름이 떨어져 지금은 다시 찍고 싶어도 찍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서울에서 촬영장인 전라남도 순천까지 필름이 오자면 이틀이 걸리니 ‘이틀 후에 찍자‘는 감독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정신이 바짝 들더라고요. 새삼 필름의 소중함을 알게 됐고요. 덕분에 매 장면을 더욱 집중해서 치열하게 연기했어요. 필름 값 하는 배우가 돼야 하잖아요(웃음). 그렇게 대사 하나, 표정 하나, 감정 하나, 몸짓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다 보니 신인으로, 초심으로 돌아간 것 같아 좋았습니다.”

박철민이 뱃살을 줄이는 이유

영화 ‘아부지’를 통해 또 하나의 옷을 입은 박철민, 연기 인생 20년 동안 수많은 옷을 덧입어 왔을 그에게도 욕심나는 연기가 있다. 바로 그의 로망이자 연기 인생의 목표인 ‘멜로 도전’이다. ‘멜로 연기’는 그를 절제가로 만들었다. 멜로 연기에 적합한 배우가 되기 위해 뱃살 줄이기에 나선 것.

“뱃살이 축 쳐진 배우가 가슴 시린 사랑 연기를 한다면 관객이 몰입하기 힘들겠죠. 아련한 멜로 연기를 소화하기 위해 뱃살 줄이기에 나섰습니다. 요즘 식이요법과 등산을 병행하면서 몸 가꾸는 중입니다.”

그의 멜로 연기에 대한 활화산 같은 열정은 끝이 없었다.

“죽는 날까지 사랑해야 하는 게 인간이듯, 청춘들의 사랑과는 또 다른 중년의 사랑을 표현해 보고 싶어요. 이제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나이이기에 가능한 그런 사랑이 있지 않을까요. 다른 무엇도 아닌 순수한 사랑에 눈 먼 남자, 저는 끝없이 멜로 연기에 도전할 겁니다.”

20여 년 동안 다양한 연기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멜로’를 동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멜로’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멜로는 배우라면 한 번씩 맛보고 싶은 성스러운 물과 같죠. 출연료를 포기하더라도 맑고 깨끗한 사랑 연기를 할 수 있다면 주저 없이 도전할 겁니다. 좋은 배역이 들어왔는데 행여나 제 외모가 걸림돌이 된다면 수술을 해서라도 출연할 의향이 있습니다. 박성수 감독이 차기작에서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만드신다기에 전 무조건 출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박철민표 멜로 연기 기대해주십쇼.”



3시간 이상 울리지 않는 삐삐 바라보기도

‘멜로’의 꿈을 키우는 박철민은 바쁜 배우다. 스크린 활동 뿐 아니라 현재 방영 중인 KBS 수목드라마 ‘파트너’에서는 법무법인 이김의 사무장 변항로 역으로 출연 중이며, 지난 5월부터는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웬만하면 출연하는 배우’라고 설명했다. 10여 년 동안 무명 배우로 생활하면서 배역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란다.

“딸아이와 놀이터를 나갔는데 3시간 동안 삐삐만 쳐다본 적도 있었습니다. 울리지 않는 삐삐를 바라보면서 ‘날 불러주는 곳이 한 군데도 없구나’하는 절망감을 느꼈고, 배역의 소중함도 몸소 깨닫게 됐죠. 사람들은 ‘이제 가려서 연기할 때도 되지 않았냐’라고 충고하는데 전 불러만 주신다면 감사히 여기며 달려갈 겁니다.”

쉼 없이 연기를 했기 때문일까.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연기 패턴이 비슷하다”는 평가를 내릴 때 가장 두렵다고 털어놨다.

“자주 출연하다보니 사람들이 제 연기에 대해 조금씩 식상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충고를 들었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목소리나 연기 톤을 바꾸는 것도 우습죠. 그래서 전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나만의 색깔이 들어가면 돼’라고 스스로 격려하면서 연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화투의 오광 중 하나인 ‘비광’같은 배우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비광은 본인이 갖고 있을 때 소중함을 모르지만 사라지고 나서야 존재의 귀함을 깨닫게 되죠. 제가 만약 사람들의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 누군가 저에 대해 ‘비광같은 배우였다’라는 말을 해준다면 정말 영광스러울 것 같습니다.”

“왜소해진 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화 어떨까요?”

한국 영화의 감동 릴레이는 계속된다. 노부부와 소의 동반자적 삶을 담아낸 ‘워낭소리’, 탈주범과의 질긴 싸움을 웃음과 함께 그려낸 ‘거북이 달린다’에 이어 진한 부성애를 녹여낸 ‘아부지’가 관객을 찾아간다. ‘아부지’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지만, 내색하지 못하고 무뚝뚝함으로 일관했던 한 세대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거대한 존재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자식들에게 하나 둘 내어주고 왜소해지신 분이죠. 우리 영화를 통해 먼지에 쌓인 아버지를 꺼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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