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10대 성폭력… 갈수록 ‘저연령화’

브레이크 없는 10대 성폭력… 갈수록 ‘저연령화’

기사승인 2009-07-16 17:17:01

[쿠키 사회] 10대 성폭력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과거에는 가해자가 주로 어른이었지만 최근에는 또래 학생들이다. 성폭력 가담 연령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고, 여러 명이 1명을 성추행·폭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라리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면 괴로움이 덜할텐데…”

승희(15·가명)는 지난 4월 성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는 같은 중학교 남학생들. 1명이 아니라 3명이었다. 승희는 학기 초만해도 자신에게 이렇게 끔찍한 일이 닥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혜진(15·가명)이와 친해졌고, 혜진이가 알고 지내던 문제의 남학생들과 종종 어울렸다.

학교가 파하면 친구들은 승희네 집에서 자주 모였다. 승희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느라 늦게 들어오셨다. 어느날 남학생들이 승희네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 왔다. 게임을 하면서 술을 마셨는데 2시간 정도 지나자 승희는 몸을 못가눌 정도로 취했다. 갑자기 남학생 1명이 달려들더니 옷을 벗겼다. “그러지 말라”고 거부했지만 허사였다. 이후 상황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자신을 차례로 덮친 남학생들 얼굴만 또렷하다. 혜진이는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 만에 학교에 소문이 퍼졌다. “나랑도 놀자”는 같은 반 남학생의 말을 듣고 승희는 다음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학교폭력 SOS지원단 김미정 위기지원팀장은 16일 “지난 2년간 1∼2건을 제외하고 성폭력 상담 사건들이 전부 또래 집단 성폭행이었다”며 “특히 중학생들의 성폭행사건이 많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미성년 성폭력 가해자수는 2005년 1329명에서 2008년 2717명으로 3년새 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성인 대비 미성년 성폭력 가해자 비율 또한 9.7%에서 15.2%로 급증했다.

특히 가해자의 저연령화 추세가 뚜렷하다. 2005년에는 미성년 가해자 중 18세가 268건으로 가장 많았으나 2008년에는 16세가 605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15세가 517건으로 뒤를 이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전국 초·중·고교 성폭력 발생건수를 집계한 자료에는 중학교 발생건수가 68건으로 전체(120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초등학교 교실도 성폭력 노출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어머니 박모(40)씨는 며칠 전 아이의 방을 청소하다가 책가방에서 벌거벗은 여성이 그려진 그림카드를 발견했다. 박씨는 아들의 말에 더 기가 막혔다.

“이 카드 안가져가면 애들한테 따돌림 당한단 말야.”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김미옥 상담팀장은 “초등학교 때 인터넷 음란물을 접한 아이들이 무심코 가슴이나 성기를 건드리며 장난치는 일이 많다”며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음란물을 따라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성폭력에 물들게 된다”고 말했다.

학교에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다


10대 성폭력이 빈번한데 학교는 쉬쉬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이로 인해 피해자와 가족들이 2차, 3차 피해를 겪는 일이 다반사다. 학교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미루는 사이 피해자가 더 큰 피해를 입기도 하고, 가족이 나서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법적 소송에만 수년을 허비해야 한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둔 민수(14·가명) 어머니 김모(42)씨는 최근 한밤 중에 아이의 잠꼬대에 잠이 깼다. 민수는 식은 땀을 비오듯 흘리며 “악” 소리를 몇분 간 질러댔다. 요즘 아이의 멍한 표정을 자주 본 터라 병원에 데려갔다. 민수에 대한 진단은 정신분열증.

민수는 지난해부터 같은 학교 또래 남학생 2명으로부터 여러 차례 성추행을 당했다. 가해 학생들은 민수의 성기를 꼬집으며 민수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찍은 뒤 ‘돈을 안 가져오면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을 했다. 그제서야 김씨는 얼마전부터 지갑에서 5000원, 1만원씩 돈이 없어진 일이 떠올랐다.

당장 학교로 쫓아갔다. 하지만 담임교사는 “아이들 장난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씨는 가해 학생의 사과를 받아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극성스러운 사람으로 쳐다보는 교사의 눈길을 느끼며 발길을 돌렸다. 그는 “아이가 교사 눈 밖에 날까봐 말도 더 못하겠고 전학가는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형식적인 성 교육은 이제 그만

인터넷에서 홍수를 이루는 음란물이 10대 성폭력을 부추기는 주범으로 꼽힌다. 음란물에 자주 노출된 청소년들은 성추행·폭행을 저질러 놓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김 팀장은 “음란 영상물을 보고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해도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아이도 있다”며 “1년에 한 강당에 전교생을 모아놓고 강의하거나 비디오 시청으로 끝나는 성 교육이 아니라 ‘성폭력은 범죄이며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도록 토론 위주의 성 교육이 자주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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