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이병헌 “월드스타? 거품으로 남기 싫다”

[쿠키人터뷰] 이병헌 “월드스타? 거품으로 남기 싫다”

기사승인 2009-08-14 18:42:00

"[쿠키 연예] SBS 드라마 ‘올인’ 평균 시청률 37%(AGB 닐슨 미디어 리서치 기준), 한국영화관객동원 순위에서 6위를 차지한 ‘공동경비구역 JSA’(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보실 기준), 전국 관객 668만 명을 동원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공히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점령한 흥행보증수표라는 말은 연기 경력 19년차 배우 이병헌(39)을 설명해주는 이력이자 수식어다.

최근에는 SF 블록버스터 영화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이하 ‘지.아이.조’)을 통해 할리우드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인류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 군단 ‘코브라’에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비밀 병기 스톰 쉐도우 역으로 등장한다.

서울 적선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은 할리우드 첫 진출에 대해 묻자 비교적 만족한다고 답했다. “세계무대에 갓 얼굴을 알린 신인 배우로서 첫 술에 배부르고 싶어 한다면 큰 욕심”이라며 “세계 영화인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신호탄으로서 적당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어딘가 만족하지 못한 듯한 느낌, 그것은 베테랑 배우의 큰 그릇을 채우기엔 부족한 ‘단선적인 스토리와 캐릭터’에서 배어나오고 있었다. 단조로운 캐릭터가 자신의 할리우드 행을 주춤거리게 만들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동양 배우들은 으레 무술을 하고 칼을 휘두르죠. 그런 모습이 꼭 나쁘다고 볼 수 없지만 전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지.아이.조’의 스톰 쉐도우는 상대를 무찌르는 단순한 악역이에요, 그래서 망설여졌죠. 대사는 1차원적이고 내용도 단순해서 시나리오를 던졌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 자신 또한 어린 시절 동양 배우들의 할리우드 무협 영화를 보면서 꿈을 키웠더라고요. 세계 관객 누군가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는 입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할리우드의 대지에 설 마음이 동하더라고요.”



출연 결정을 하고 나니 순풍에 돛단 듯 일이 순조롭게 풀려갔다. 언어 감각이 좋은 편이라 영어 연기도 어느 정도 자신 있었다. SBS 드라마 ‘백야 3.98’을 촬영할 당시 러시아어를 구사했는데, 러시아인으로부터 ‘언어를 익히는 속도가 빠르고 발음이 정확하다’는 칭찬을 받았던 경험, 일본어를 짧은 기간 동안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현지인들과 대화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았다던 일화들을 공개하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예상 만큼 영어 연기가 만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병헌 특유의 언어 감각으로 극복해 나갔다. 외국 작품에 출연한 한국 배우들이 영어 대사 구사를 왜 어려워하는지 몸소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촬영하기 전 영어 레슨을 틈틈이 받았고, 나름대로 영어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웃음). 장음과 단음을 정확히 구분하면서 써야 했어요. 또 단순히 발음만 좋아서 되는 게 아니라 대사에 감정을 실으면서 연기해야 하기에 만만치 않더라고요. 오랜만에 코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긴장하면서 촬영했습니다.”

대사 신경 쓰랴, 감정 연기하랴 정신없이 지냈던 이병헌은 자신을 둘러싼 소문에 황당할 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평소 말수가 적은 그에게 활기찬 분위기의 할리우드 촬영장은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외국 배우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마치 몇 년을 본 것처럼 친근하게 대하더라고요. 전 내성적이기도 했거니와 괜히 입을 뗐다가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까봐 조용히 있었죠.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니 사람들과 점점 멀어져갔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건방지고 무게 잡는 배우’로 인식되어 있더라고요. 물론 배우들과 친해진 다음 모든 오해를 풀었지만요(웃음). 이번 촬영을 통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이병헌은 “완성된 작품을 보고 나서야 얼마나 대단한 작품에 출연했는지 실감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거대한 스케일, 숨 막히는 추격전,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 등 영화는 상상이상이었다고.

그는 이번 작품을 촬영하면서 새 친구도 얻었다. 타고난 재능과 강인한 결단력을 지닌 특수부대 대위 듀크 역의 채닝 테이텀과 섹시한 여전사 베로니스 역에 시에나 밀러와 호흡하면서 함께 웃고 울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 한국을 찾아준 채닝 테이텀과 시에나 밀러를 위해 성대한 파티로 고마운 마음을 대신했다.

“일본에서는 팬들이 성대한 대접을 해주신 덕분에 즐겁게 지냈어요. 한국에서는 제가 직접 친구들을 위해 파티를 준비했고요. 파티가 끝난 뒤 두 친구들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이라며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고마워하더라고요. 저도 덩달아 기뻤습니다.”

그는 ‘월드스타’ ‘할리우드 배우’라는 거창한 수식어 보다 ‘연기하는 배우’로 남고 싶다는 연기관에 힘을 실어 말했다.

“실체가 받쳐주지 못하는 허황된 이미지라면 팬들이 얼마나 실망하겠어요. 아직은 제가 큰 그릇이 아니고, 실력도 부족한 것 같아서 ‘월드스타’라는 표현은 거부감이 일더라고요. 지나치게 포장돼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배우로 각인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나의 가치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은 한국 영화”라며 “국민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국내에서의 활동을 기대해달라고 당부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김은주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