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①] ‘웨딩 미다스의 손’ 김태욱 “사상 최악은 나와 채시라의 결혼식”

[쿠키人터뷰①] ‘웨딩 미다스의 손’ 김태욱 “사상 최악은 나와 채시라의 결혼식”

기사승인 2009-08-20 15:52:01

"[쿠키 연예] 쿠키 연예팀에서는 매주 가요, 영화, 드라마 등 연예가 핫이슈 및 키워드를 분석하는 시간을 갖는다. 8월에는 ‘창업에 성공한 연예인’을 만나 사업 노하우와 성공 과정을 공개한다. 전국 240여 개의 체인점을 둔 ‘벌집 삼겹살’ 대표로 성공한 개그맨 이승환(33), 온라인 의류쇼핑몰 ‘뽀람’으로 연매출 20억 원을 올리는 방송인 백보람(29)을 만났다. 이번 주에는 웨딩업계에서 건실하게 기반을 다져온 ㈜아이웨딩네트웍스 대표 김태욱(40)을 인터뷰했다.

2000년 설립된 ㈜아이웨딩네트웍스는 지난해 1만 쌍을 결혼시키고, 총 거래액 500억 원을 돌파했다. 창업 초기와 비교했을 때 100배 이상의 초고속 성장이다. 1000억 원을 2009년 목표치로 삼을 만큼 발전 기류를 타고 있다. 내년에는 국내 웨딩업계 최초로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으며, 중국 및 일본 진출도 꾀하고 있다. 이 모든 결과가 가수 출신 기업가 김태욱의 손에서 나왔다.

그와 얘기를 나누노라니, 손에 닿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했다는 그리스로마 신화 속 프리지아 왕국의 왕 미다스가 연상됐다. 이유 있는 성공, 그 비결을 엿본다.

그가 사업가로 변신하게 된 이유

1991년 노래 ‘개꿈’으로 데뷔한 김태욱은 줄곧 가수로 활동했다. 2000년 2월 톱스타 채시라와 결혼식을 올린 이후 돌연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것도 당시 불모지로 여겨진 웨딩 사업에 도전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행보에 의구심을 품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을 되짚어보면 웨딩 사업가로 변신하게 된 것은 ‘순리’이자 ‘운명’이었다.

김태욱은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일찌감치 찾았다. 중학교 때부터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게 삶의 낙(樂)이었다. 그래서 공부는 뒷전이고 음악에만 매달렸다. 음악밖에 모르던 그가 자신의 비즈니스 기질을 알게 된 것은 1990년대 밴드로 활동하면서부터다. 손수 유통망을 뚫고, 홍보를 하면서 앨범을 팔러 다닌 게 ‘사업가 김태욱’의 시작이다.

1998년, 그의 가수 인생에 위기가 찾아온다. 의사로부터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가수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절대절명의 위기였다. 그로부터 1년 뒤 노래는 고사하고,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종이에 글을 써가며 대화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혼까지 앞두고 있는 상황, 불안함은 더욱 커졌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유능한 의사를 많이 만나봤지만 원인을 발견할 수 없었어요. 서서히 삶의 의욕을 잃었고 제 자신을 원망하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아내로부터 선물 받은 성경책을 읽으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습니다. 불평하는 삶에서 긍정의 마음으로 바뀌게 된 거죠. 마음을 편안하게 먹자 2002년부터 서서히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거죠.”

사업가에게 ‘위기는 기회’라는 경구가 김태욱의 현실로 다가왔다. 노래를 부를 수 없는 가수가 택한 길은 웨딩 사업이었다. 웨딩업은 채시라와 자신의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관심을 두게 된 분야였다. 10조 원이라는 거대한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체계적 시스템이 구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체감했다.

김태욱은 사업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겪었던 불편의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찾았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IT와 웨딩 서비스를 접목시킨 ‘위드’(WITH) 시스템이다. ‘위드’는 클릭 한 번으로 결혼 준비를 모두 마칠 수 있는 인터넷 유통 서비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성공을 전망하거나 믿어주지 않았다.

“메이크업, 예식장, 예물, 신혼여행 등 결혼과 관련된 상품을 인터넷으로만 준비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당시에는 웨딩 플래너들이 고객들과 일일이 매장을 다니면서 비용과 품질을 확인했거든요. 그래서 다들 ‘어떻게 다니지 않고 결혼식을 준비할 수 있겠냐’며 제 사업에 대해 회의적이었습니다.”



창업 이후 5년 동안 위기에 시달려

각 분야의 전문 업체와 협력해 인터넷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된 것은 질 좋은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인들이 직접 발로 뛰면서 알아본 가격과 비교할 때 10~30% 정도의 절약 효과를 제공하고자 했다. 또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인터넷 원스톱 서비스’로 간편하게 해결해 주려는 의도였다.

2000년 IT 웨딩 유통이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은 웨딩 업계에 핵폭풍을 몰고 왔다. ‘㈜아이웨딩네트웍스를 통해야 웨딩 사업이 가능하다’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관련 업체들이 앞을 다투며 입점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 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가 성공가도를 달린 것은 아니다. 창업 후 5년 동안 흑자와 적자를 반복하면서 위기를 겪었다.

“정말 산전수전부터 시작해 공중전까지 어려움이란 어려움은 다 겪었어요. 연예인이 사업을 한다고 하면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하시는데 불리한 면이 더 많거든요. 가수 출신 사업가에게 선뜻 일을 맡기는 업체들이 없었죠. 신뢰도를 쌓는 게 힘들었고, 인터넷 시스템을 대중에게 알리는 게 어려웠습니다. 또 연예인들의 결혼식을 하나 둘 맡다보니 ‘㈜아이웨딩네트웍스는 스타들만 결혼시키는 곳’으로 인식하시더라고요. 일반인들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라는 것을 알리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김태욱이 뽑은 가장 인상 깊은 스타 결혼식은?

그동안 ㈜아이웨딩네트웍스를 거쳐간 스타 부부들은 많다. 2002년 1월 이승엽-이송정 부부, 2002년 10월 박신양-백혜진 부부, 2005년 4월 한가인-연정훈 부부, 2006년 5월 신동엽-선혜윤 부부, 2008년 3월 송일국-정승연 부부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연예인들이 성공리에 결혼식을 마쳤다.

김태욱은 스타부부 유치의 비결로 ‘신뢰’를 꼽았다. “대부분 크게 오해하시는 게, 우리 회사가 ‘협찬으로’ 스타들을 섭외한다고 여기시는 겁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웨딩네트웍스의 철학은 ‘무리한 협찬은 해줄 수 없다’는 겁니다. 일반인과 거의 똑같은 대우를 해줍니다. 기억에 남는 결혼식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스타나 일반인이나 동일합니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결혼식과 최악의 결혼식을 물었다. 먼저 좋은 기억을 남긴 결혼식. “이승엽, 신동엽, 송일국 부부의 결혼식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처음에는 고객과 대표의 입장에서 만났으나 대화도 잘 통하고 취향도 비슷해서 지금은 형 동생 할 정도로 친해졌거든요.”

최악의 결혼식은 다름아닌 자신과 아내 채시라의 결혼이라고 말하며 쑥스러워했다. 당시 웨딩 시스템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아 하나부터 열까지 허술했다고 털어놨다.

“아내는 드라마 촬영 때문에 바빠서 제가 결혼식을 준비했는데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식장에 기자들이 즐비해 주례 선생님을 쳐다보지 못할 정도였죠. 양가 부모님도 제 시간에 못 들어올 정도로 식장 안은 복잡했고요. 또 식장 안을 배회하던 분들이 자리 잡고 앉아서 식사를 하시더라고요. 식이 끝나고 테이블마다 인사를 도는데 생전 처음 보는 분들이 앉아 계시더라고요. 황당 그 자체였죠. 허겁지겁 결혼식을 끝내고 신혼여행도 도망가다시피 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결혼식이 기대에 미치지 못 하자 안타까움은 더욱 컸다. 하지만 하나를 잃으면 얻기도 하는 법. 이 일을 계기로 고객 결혼식만큼은 기억에 남을 수 있는 멋진 이벤트로 만들자는 신조가 생겼단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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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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