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박연차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세종증권 매각 비리 관련 피고인 등 10명에게 전원 유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홍승면)는 16일 박 전 회장에게 징역 3년6개월, 벌금 300억원을 선고했다. 박 전 회장에게 적용된 조세 포탈과 뇌물공여, 입찰방해, 배임증재 등 모든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해외에 비자금을 조성하고 뇌물과 정치자금으로 제공한 죄질이 가볍지 않다"며 "공직자의 뇌물수수를 엄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뇌물을 준 경우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전 회장은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양형기준의 적용을 받진 않지만, 가장 악질적인 뇌물공여 범죄에 대해 징역 3∼5년을 내리도록 권고한 현 양형기준에 비춰 봐도 낮은 형량은 아니다.
박 전 회장으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민주당 최철국 의원은 벌금 700만원, 추징금 5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최 의원은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한다. 재판부는 "금품을 받기 전 태광실업 관계자와 수차례 통화한 내역이 있는 만큼 돈의 액수를 몰랐다는 최 의원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상철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추징금 2469만원을, 김종로 부산고검 검사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추징금 1245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검사로서 수사 중인 사건과 관련해 금품을 받은 것은 검찰 조직에 대한 국민 신뢰를 훼손한 것"이라고 말했다.
16일 현재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지난 6월 대검 중앙수사부에 의해 기소된 21명 중 1심 재판이 마무리된 사람은 14명이다.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피고인 대부분이 혐의를 부인하고 뚜렷한 물증 역시 없어 '박연차 입만 바라본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지만 피고인들 혐의가 모두 인정된 것이다. 박 전 회장 등 주요 증인들이 법정에서도 일관된 진술을 해 재판부가 결정적인 증거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박진 김정권 의원과 민주당 이광재 서갑원 의원 등에 대한 선고는 이달 말에서 다음달 초 이뤄질 예정이다.
검찰은 선고 결과에 대해 일단 안도하면서도 표정을 관리하는 분위기다. 검찰 관계자는 "아직 상급심이 남아 있는 만큼 달리 언급할 게 없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검찰이 박 전 회장에게 예상보다 낮은 징역 4년을 구형하고 협조를 이끌어낸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박 전 회장으로부터 불법 자금을 받은 정치인이 더 있다는 사실이 일부 드러나 수사의 형평성이 훼손됐다는 비판은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한편 휴켐스 헐값 인수 의혹과 세종증권 매각비리에 연루돼 함께 기소된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 등도 중형을 선고받았다. 정 전 회장에겐 징역 10년, 추징금 78억7018만여원이 선고됐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선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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