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미실’의 화려함 내 손안에 있소이다…‘선덕’을 이끄는 숨은 공신

[쿠키人터뷰] ‘미실’의 화려함 내 손안에 있소이다…‘선덕’을 이끄는 숨은 공신

기사승인 2009-10-01 12:52:02

"[쿠키 연예] 쿠키 연예팀에서는 매주 가요, 영화, 드라마 등 연예가 핫이슈 및 키워드를 분석하는 시간을 갖는다. 10월에는 인기 프로그램이나 가수의 뒤에 서있는 스태프를 통해 대박 프로그램의 이면이나 인기 비결, 스타들의 면면을 들어본다. 이번 주에는 MBC 월화사극 ‘선덕여왕’에서 미실(고현정), 덕만(이요원) 등 여배우들의 헤어스타일을 전담하고 있는 이은영(38) 씨를 만났다.

최근의 드라마 시장은 ‘선덕여왕’(이하 ‘선덕’)이 쥐락펴락하고 있다. KBS‧SBS 월화극은 ‘선덕’의 독주로 연일 울상이다. 수목극도 윤은혜, 윤상현의 ‘아가씨를 부탁해’(KBS)와 지성, 성유리의 ‘태양을 삼켜라’(SBS)가 포진되어 있지만, ‘선덕’의 인기를 따라잡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선덕’은 MBC 국민드라마 ‘대장금’을 집필한 김영현과 2000년 히트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상연 작가가 만든 탄탄한 시나리오에 배우 고현정, 이요원, 김남길, 정웅인 등의 호연이 보태져 대박 드라마가 됐다. 이들이 시청자 앞에 나서 ‘선덕’을 이끌고 있을 때, 헤어담당 이은영 씨를 비롯해 많은 스태프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드라마를 뒷받침하고 있다.

“미실 헤어스타일 가장 어려웠죠”

“제 일을 했을 뿐인데 인터뷰할 자격이 되나요?”

이은영 씨는 겸손한 자세를 보였지만 고현정(미실), 이요원(덕만), 서영희(소화), 윤유선(마야부인) 등 주연여배우들의 헤어스타일이 그의 손끝에서 완성됐고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MBC 미술센터 소속인 이은영 씨는 ‘내일을 향해 쏴라’와 ‘로망스’ ‘베스트극장’ 등을 거친 뒤 ‘주몽’ ‘이산’ ‘신돈’ ‘대장금’ 굵직한 사극 작품에서 경험을 쌓은 인재다.

이 씨에게 ‘선덕’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작업이었다. ‘선덕’이 국내 드라마로서는 최초로 신라시대를 다룬 작품이라 역사적 자료가 부족했기에 헤어스타일의 콘셉트를 잡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특히 그에게 숙제로 다가왔던 캐릭터는 미실이었다. 신라 중대 학자인 김대문이 풍월주의 역사를 기록한 책인 ‘화랑세기’에 거론되는 인물이긴 하지만, 그 외에 별다른 사료가 없어 캐릭터 파악이 쉽지 않았다. ‘화랑세기’마저도 원본이 아닌 필사본이기에 이 씨에게 확신을 선물하지는 않았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빚어진 ‘선덕’ 속 미실, 어떤 헤어스타일을 연출해야 할 지 고심이 컸단다.

“신라시대 유물들이나 역사서가 남아있지만 헤어스타일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거든요. 왕족은 고증에 충실해 금 위주의 장신구를 만들었고요, 미실이나 궁궐에 사는 여자들은 신라시대 여인의 헤어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상상력을 발휘했어요. 특히 미실은 위엄을 지닌 인물이기에 다른 여배우들보다 크고 화려한 장신구를 사용했습니다. 고현정 씨는 키가 크고 얼굴이 작아서 어떤 헤어스타일을 연출해도 잘 어울리더라고요.”



미실과 덕만, 장신구로 차별화

미실에게 대항하는 인물인 덕만도 심혈을 기울였단다. 미실은 뛰어난 미모로 왕들과 화랑들을 휘어잡았고, 덕만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여왕의 자리에 오르는 인물이기에 두 사람의 격돌은 헤어스타일에서부터 시작돼야 했다. 미실은 크고 화려한 가체를, 덕만은 단아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긴 가발을 사용했다. 여기에 장신구 색깔로 포인트를 뒀다.

“미실은 얼굴을 뒤덮을만한 큰 가체에 차가운 느낌을 주는 은색과 보라색 장식을 사용했어요. 덕만은 궁궐 밖에 있었을 때에는 남자처럼 상투 머리를 했는데 입궐 이후에는 공주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부분 가발로 여성스러운 느낌을 살렸죠. 여기에 금색과 은색을 혼합해 은은한 느낌을 주려고 했습니다.”

손재주가 좋은 이 씨는 현재 미실과 덕만이 착용하는 헤어 장신구의 대부분을 직접 만들었다. 특히 미실이 주로 착용하는 은제품은 이 씨의 손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다. ‘손으로 만든 제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정교함과 화려함이 눈에 띈다. 3분의 1가량 협찬을 받지만 공수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궁여지책으로 한두 개씩 만든 게 계기가 됐다. 이제 웬만한 장신구는 직접 만들 수 있을 정도다.

“작품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는 동대문, 남대문 시장 일대를 샅샅이 뒤져서 재료를 구했죠. 장을 보러 다니면서 머릿속으로 구상한 아이템을 어떻게 만들 지 상상했어요. 헤어스타일에 쓰이는 장신구는 무엇이 정답이라고 콕 집어서 말할 수 없지만 너무 현대적이거나 과하지 않는 방향으로 잡았어요.”

“누리꾼 예리한 지적 대단”

촬영에 돌입하면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 모든 소품을 손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다른 작품에 쓰였던 장신구 일부를 재사용할 때가 간혹 있다. 요즘 누리꾼의 눈이 좀 매서운가. ‘주몽’과 ‘선덕’에서 동일하게 사용된 장신구를 캡처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사진을 보고 무척 놀랐다고 털어놨다.

“제작비는 한정되어 있고, 시간도 넉넉하지 못해 재사용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어쩜 그렇게 잘 찾아내시는 지, 네티즌 정말 대단해요(웃음). 캡처 사진에 평가까지 달아놓은 걸 볼 때 얼마나 가슴이 떨렸는지 몰라요. 일부 배우들이 상처 받을까봐 인터넷 게시판을 보지 않는다던데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 알 것 같네요(웃음).”



헤어스타일 연출은 시간과의 싸움

촬영에 앞서 배우가 헤어스타일에 투자하는 시간은 대략 1시간 내외다. 스타일리스트들은 주어진 시간에 맞춰 헤어스타일을 완성해야 하기에 ‘촌각’을 다툴 때가 많다. 이 씨는 짧은 시간에 다양한 헤어 효과를 내기 위해서 간단한 머리스타일을 미리 만들어 놓는다. 예를 들어 부채꼴 모양의 부분 가발은 연출하려는 자리에 핀만 꽂으면 금세 화려한 헤어스타일이 완성된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만들어낸 창작품이다.

큰 가체에다 무게감 있는 장신구까지 머리에 올려야 하는 여배우들의 고충을 헤아려 가체 속을 비우는 방법도 생각했다. 또 요즘에는 가발 기술이 발달해 가벼운 소재로 대폭 바뀌었다. 덕분에 무게도 5kg에서 1~2kg정도 감량됐다.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 연출을 위해서는 부분 가발을 올려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뒤덮어 감추는 방법도 있다.

헤어스타일 연출법은 대본 내용에 따라 달라진다. 이 씨를 비롯해 헤어팀은 대본이 나오는 대로 회의에 들어간다. 대본을 미리 읽고 어떤 장신구나 헤어스타일이 어울릴지 상의해야하기 때문. 캐릭터별로 꼼꼼히 체크하고 스케줄을 짠 뒤 헤어스타일과 장신구를 정한다.

“스타일리스트가 대본을 멀리해서는 절대 안 돼요. 얼핏 보기엔 늘 비슷한 스타일로 보이지만, 상황과 캐릭터에 맞게 미세한 변화를 주거든요. 그래야 내용을 섬세하게 살릴 수 있고, 캐릭터도 확실히 부각되고요. 예를 들어 상대 남자배우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 있다면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을 헤어에서 연출하죠. 장신구도 사랑스러운 색깔로 바꿔 배치하고요. 여배우들이 ‘오늘 헤어스타일이 대본 내용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며 반색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사람과의 만남이 내 일의 가장 큰 축복

‘어느 여배우의 머리를 만질 때 가장 편하냐’고 묻자 “우리 배우들이 얼굴도 두상도 다 예뻐서 누구 하나를 고르긴 정말 어렵다”며 “다들 성격이 좋아서 별 어려움 없이 일하고 있다”고 환하게 웃는다. 여배우의 두상도 예쁘겠지만, 더욱 예쁜 건 이 씨의 마음 아닐까.

그가 헤어스타일 리스트로 일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 것은 ‘사람을 얻었을 때’란다. 그는 10년 전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스크롤을 보고 격려 전화를 해오는 이들이 있기에 오늘도 힘을 얻는단다.

이 씨를 비롯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보태는 스태프들이 있어 ‘선덕’의 기세가 꺾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시청률의 숨은 공신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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