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앙골라 봉사’ 한은정 “빵과 사이다 보면 아이들 떠올라요”

[쿠키人터뷰] ‘앙골라 봉사’ 한은정 “빵과 사이다 보면 아이들 떠올라요”

기사승인 2010-10-26 10:19:00

"[쿠키 연예] 아프리카 남서부에 위치한 앙골라 캄푸타 마을을 가면 ‘따봉 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트랙터가 있다. 배우 한은정의 이름으로 기부된 트랙터다.

한은정은 지난달 6일, 8박 10일 일정으로 앙골라에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KBS가 G20 서울정상회의를 기념해 특별 기획된 ‘희망로드 대장정’ 중 하나로 박신양(시에라리온), 전광렬(라이베리아), 한고은(페루), 이성재(볼리비아) 등 10명의 스타가 참석한 대규모 프로젝트다. 한은정은 전작 ‘구미호-여우누이뎐’ 드라마 촬영 일정 때문에 마지막 주자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25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만난 한은정은 앙골라를 다녀온 지 한 달이나 지났지만 현지 시민의 아픔과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봉사활동은 전부터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일회용 이벤트나 쇼 정도로 치부될까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그러던 중 ‘희망로드 대장정’이 일회성 방문만이 아닌 지속적으로 관리해주고 도와주는 취지에서 마련된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앙골라를 선택하게 됐다.

“그 전부터 같이 봉사활동을 가자는 곳이 있었는데 자신이 없었어요.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의 없어 보이거나 제 의도와 달리 잘못 비춰질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번에 앙골라를 가게 된 것은 단순히 물품만 전달하러 가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도와준다고 하기에 가게 됐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가장 놀란 것은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들쥐를 잡아먹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1~2시간 정도 일대를 샅샅이 뒤져서 세 마리 정도 잡아와 아무렇지도 않게 불에 구워 먹는 아이들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고.

“가브리엘이라는 아이가 들쥐를 잡아서 구워먹는데 그 폼이 굉장히 익숙하더라고요. 꼬리를 뗀 뒤 불에 살짝 익으면 배를 갈라서 내장을 짜내고 앞뒤로 바짝 익혀 먹더라고요. 그것도 여러 명의 아이들이 뜯어서 나눠먹는데…. 그나마 단백질이라 그런지 들쥐라도 잡아먹은 아이들은 병치레가 덜 한 것 같더라고요. 앙골라를 떠나기 마지막 날 가브리엘과 몇 명의 아이들을 초대해서 빵과 음료수를 줬는데 난생 처음 먹어본다는 듯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먹더라고요. 나중에는 배가 빵빵해 져서 돌아갔어요(웃음). 아직도 사이다와 빵을 보면 가브리엘 생각이 많이 나요.”



현지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날로 식욕이 떨어졌다. 그나마 먹을 만한 것들은 아이들에게 나눠준 터라 8박 10일 동안 과자나 소시지로 허기를 달랬다. 벌거벗은 아이들도 상당해 입던 옷을 벗어서 나눠주기도 했다.

“제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열악했어요. 입을 옷이 없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막상 가보니 정말 입을 게 없더라고요. 날씨가 13도 정도 됐는데 한 아이가 옷이 없어서 발가벗고 다니더라고요. 사계절 내내 한 벌로 사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고요. 입고 있었던 옷도 벗어서 주고 그랬어요.”

처음 가는 봉사활동이라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은 값진 경험이었다.

“오지로 봉사활동 다녀오신 분들이 이야기를 들으니까 정말 걱정이 됐어요. 날짜가 다가올수록 무서웠고요. 그렇지만 ‘다녀오길 잘했다’ 생각이 들 만큼 얻은 게 더 많았던 뜻 깊은 시간이었어요. 아쉬운 게 있다면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걸 가져가지 못한 거였어요. 제가 지우개, 스케치북, 색연필, 펜 같은 것을 사갔는데 가서 보니까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건 먹을 것과 입을 것이더라고요. 그렇게까지 굶주리고 벌거벗고 사는지 몰랐어요. 다시 기회가 주어지면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가져다주고 싶어요.”

트랙터를 기부하게 된 것도 현지인에게 가장 쓸모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옥수수가 주식인 이들에게 땅을 가꿀 만한 기계가 부족했고, 지뢰 폭발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해 지뢰 제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물건이 필요했다.

“제작진이 미리 가서 보니 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농사를 지어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거였어요. 옥수수나 고구마 같은 작물이 주식이다 보니 농사를 지을 만한 기계가 필요했고요. 또 목숨을 걸고 지뢰를 제거하는 경우도 많아서 트랙터가 참 필요하겠다 생각했어요.”

하루 한 끼를 먹지 못해 허덕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한은정은 부족함 없이 풍요로움을 누리고 사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 봤다고 한다. 밥을 먹을 때 마지막에 한 두 숟가락 정도 남기던 버릇도 고쳤다. 이번 봉사활동은 그를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남들보다 아끼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앙골라에 가서 보니 아끼려면 한참 멀었더라고요. 더 많이 아끼고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앙골라 가기 전엔 제 습관이 밥을 조금 남기는 거였는데요. 다녀온 뒤로는 밥을 끝까지 다 먹게 됐어요. 맛이 없으면 다시 만들어 먹었는데 요즘에는 맛이 없어도 꾹 참고 다 먹습니다(웃음). 빵도 사치인 것처럼 느껴져서 갔다 온 이후로 빵을 입에 대지 않고 있어요.”



앙골라에서 국내로 들어온 뒤에도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있다. 내달 6일에는 현지에서 만난 소녀 안드레아(15)의 이를 치료하기 위해 방한 계획을 짰다. 안드레아는 치과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이가 썩어서 턱 밖으로 고름이 나온 상태다. 조금만 더 방치하면 뇌로 전이돼 생명까지도 위협하게 된다.

“안드레아는 현지 병원에서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는데요.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치료받고 회복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정말 불쌍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이번 방문을 통해 알게 됐어요. 가까이 둘러보면 우리 주위에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많으니 조금씩 손을 내밀면 좋을 것 같아요.”

한은정은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 엄마 역할을 맡게 된다면 예전보다 더 깊은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연기의 폭도 한층 더 넓어진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앙골라에서 피워낸 한은정의 사랑 일기는 오는 30일 오후 5시35분 KBS 1TV ‘희망로드 대장정’에서 공개되며, 내달 6일에는 오후 6시부터 2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희망로드 대장정’에 참석한 배우들과 가수들이 꾸미는 자선 콘서트를 연다. 이날 방송에서 한은정은 가수 임태경과 듀엣곡을 열창할 계획이다. 10명의 배우들이 노래한 DVD를 출시해 수익금을 봉사활동을 다녀온 지역에 기부할 예정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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