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본선으로 진출할 합격자는…, 두두두두둥.” 긴장감이 극도에 달하는 순간이지만 짜릿함이 예전만 못하다.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나면서 시청 재미가 반감한 때문이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프로그램에 “하도 봐서 식상하고 질린다”는 시청자 의견이 날로 늘고 있지만 이미 롤러코스터에 승차한 방송사의 프로그램 양산은 멈출 줄 모른다. 방송가에 부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풍을 진단해 봤다.
‘슈퍼스타K’ 뒤따라 MBC·KBS·SBS 무조건 승차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동은 지난 2009년 케이블 음악방송 Mnet ‘슈퍼스타K’가 걸었다. 열기가 식을 새라 시즌2를 내놓았고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금요일 밤 11시 케이블TV의 최강자가 된 것도 모자라 절대 부동일 것만 같던 지상파 시청률까지 갉아먹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슈퍼스타K2’의 선전에 지상파 TV가 분주해졌다.
MBC는 곧바로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이하 ‘위탄’)을 내놓으며 오디션 열풍에 발을 담갔다. 방송 초반 ‘슈퍼스타K’의 아류라는 평가와 지상파가 케이블의 ‘인기 열차’에 무임승차했다는 비난을 받으며 흔들렸지만, 본선 진출자가 가려지며 인기에 탄력이 붙더니 시청률 20%대를 점령했다. ‘위탄’ 흥행에 MBC는 다시 모험을 걸었다. 시청률 바닥을 찍었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타이틀을 ‘우리들의 일밤’으로 바꿔 포장하며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개편한 것이다. 7명의 가수들이 경합하는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일반인을 대상으로 아나운서를 뽑는 ‘신입사원’이 그 알맹이였다. ‘나가수’ 인기에 힘입어 오는 10일에는 스타들이 댄스스포츠에 도전하는 ‘댄싱 위드 더 스타’를 선보인다.
MBC의 시험을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봄과 동시에 인기에 배 아파하던 KBS와 SBS도 가세했다. 먼저 SBS는 지난달 22일부터 ‘피겨 요정’ 김연아를 내세워 스타 10인이 피겨 스케이팅에 도전하는 ‘키스&크라이’로 시청자를 유혹하고 있다. 전속 연기자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 ‘기적의 오디션’도 오는 24일 시작한다. KBS도 지난 4일 ‘나가수’의 아이돌 판으로 불리는 ‘자유선언 토요일-불후의 명곡2: 전설을 노래하다’(이하 ‘불후의 명곡2’)와 아마추어 밴드들의 오디션을 소재로 한 ‘톱밴드’를 동시에 선보였다. 오는 24일에는 18명의 일반인이 미국 하와이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도전자’를 내놓는다.
‘슈퍼스타K’로 재미를 본 CJ미디어도 고삐를 바짝 당겼다. 지난 4일 tvN을 통해 일반인의 음악과 연기 등의 재능을 평가하는 ‘코리아 갓 탤런트’를 공개했으며 오는 8월 12일에는 Mnet ‘슈퍼스타K’ 시즌3로 자존심을 이어간다.
제작과 시청에 용이…간접광고로 지상파 효자 노릇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범람 현상의 배후에는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쉬운’ 구조가 있다. 탈락과 합격이라는 규칙이 시청자의 머릿속에 이미 인식돼 있어 프로그램의 형식과 내용을 이해시키기 쉽고 긴장감 유발도 용이하다. 기획 및 제작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어 결과물을 빠르게 내놓을 수 있다는 것도 프로그램 양산을 부추겼다.
시청률과 화제 면에서도 압도적 우위를 점해 ‘광고 완판’의 황금알을 낳고 있다. ‘슈퍼스타K2’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가장 뜨겁게 몰린 곳은 ‘나가수’. ‘신입사원’ 코너와 합산되다 보니 10% 초반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나 화제성은 단연 최고다. 방송 전부터 기사가 쏟아지며 누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누가 탈락하는지, 누가 1위를 차지했는지 일거수일투족이 화제다. 이러한 관심은 ‘광고 완판’으로 직행, 광고주 및 제작진이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에 거는 기대를 높이고 있다.
간접광고도 허용되며 방송 제작환경이 유연해진 것도 오디션 열풍을 부추기는 데 한몫했다. 케이블 채널은 간접광고 덕에 편당 1억 원을 웃도는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지상파 TV도 지난해 1월부터 간접광고가 허용되면서 상금과 함께 수여되는 상품이나 소품을 방송에 노출시켜 제작비를 지원받는 경우가 허다해졌다.
어디서 봤지…비슷비슷한 포맷 헷갈려
내놓은 오디션 프로그램마다 ‘기본 이상’의 인기를 얻다 보니 방송가에서는 시청자의 ‘시청 욕구’를 방패삼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붕어빵 찍듯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복제하고 있다. 제작사에게 매출 효자요, 시청자에게는 재미의 보고라면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시대가 원하는 정답일까.
오디션 프로그램의 범람이 초래한 가장 큰 문제점은 프로그램별 개성이 사라지고 정체성이 모호해졌다는 사실이다. 지난 4일 ‘불후의 명곡2’이 방송되자 ‘나가수’와 흡사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가요계의 전설적 인물을 초대해 실력을 평가 받는 ‘불후의 명곡’ 시즌1 포맷을 가져왔음에도 무대 연출이나 구성 방식이 ‘나가수’와 거의 똑같아 시청자로부터 “‘나가수’를 그대로 베꼈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해외에서 그대로 수입한 포맷도 시청자의 눈을 피로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4일 방송된 tvN ‘코리아 갓 탤런트’의 경우 영국, 미국, 중국 등 전 세계 37개국에서 제작·방송되고 있는 글로벌 재능 오디션 프로그램 ‘갓 탤런트’의 포맷을 그대로 가져 왔다. 하지만 SBS ‘스타킹’이 보여 준 장기자랑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SBS ‘스타킹’이나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했던 인물의 중복 출연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오는 10일 방송되는 ‘댄싱 위드 더 스타’(Dancing with the stars) 역시 영국 BBC 프로그램 ‘스타와 함께 춤을’(Dancing with the stars)을 차용했다. 지난 4일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만난 임연상 PD는 “BBC에서 오랜 시간 방송됐고, 포맷을 그대로 수입했기 때문에 새롭게 창작하는 것은 힘들다. 다만 스타들이 댄스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와 과정에 집중해 사연이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다. 중간 중간 외부 가수나 사연을 가진 댄서를 초청해 스페셜 무대를 마련할 예정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기존의 경쟁 프로그램이 선사한 것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제공할지는 미지수다.
오디션 과열에 ‘조작’ 의혹 잇따라
너도 나도 오디션에 뛰어들면서 감동과 웃음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치열하다. 이 과정에서 일부 제작진은 ‘조작’ 의혹에 휘말리고 있다.
‘코리아 갓 탤런트’는 지난 4일 첫 방송에서 ‘한국판 폴포츠’를 배출했다. 대전에 사는 최성봉 씨로 초등학교 입학 전 보육원을 뛰쳐나와 화장실과 계단 등에서 노숙 생활을 하면서 독학으로 성악을 익힌 출연자다. 최 씨의 안타까운 사연과 맑은 음색에 심사위원 박칼린과 송윤아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방송 후 시청자는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최 씨는 대전예술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졸업까지 했다는 것. 이에 제작진은 “노래에 감동한 사람들에게 예고 시절이 중요한 이슈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매끄러운 방송 흐름을 위해 편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5일 재방송 분부터 인터뷰 영상을 모두 공개했으나 이미 반감을 느낀 상당수의 시청자는 “의도적으로 감동을 조작했다”며 분개하고 있다.
‘나가수’도 ‘감동 조작’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지난달 29일 방송에서 옥주현과 BMK가 노래하는 장면에 똑같은 관객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한 관객은 두 손을 꼭 쥐면서 애절한 눈빛으로 무대를 바라보았고 다른 관객은 가사를 음미하는 듯 입을 벌렸다. 물론 이 관객들의 반응이 순위 결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프로그램이나 가수의 이미지 제고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감동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제작진은 “단순한 편집상의 실수”라고 해명했으나, 지난달 22일 방송에서도 임재범과 이소라 노래 화면에 똑같은 관객이 등장해 ‘의도적 조작 편집’이라는 비난을 벗어나기 힘들게 됐다. 끊이지 않는 논란 속에 ‘나가수닷컴’이 등장하는 불명예까지 맛봤다. 시청률도 하락세로 접어들고 있다.
스타는 어디로…제작에 급급한 방송사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 얼마나 더 지속될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5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의 급증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리얼리티TV 열풍에서 왔으며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2000년대 초 전 세계에 리얼리티TV 열풍이 불었다. 리얼리티TV는 크게 서바이벌 게임, 사생활 몰래 촬영, 오디션 형태로 분류되며 성장했다. 우리나라에는 이 가운데 오디션과 리얼 버라이어티가 맞물리면서 정착했다. 대표적 예로 스타나 출연자의 사생활을 공개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하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일반인도 카메라에 노출되는 걸 크게 꺼리지 않아 오디션 열풍이 거세질 수 있었다. 3~4년 전부터 얼마 전까지 예능계에 ‘리얼 버라이어티’ 붐이 일었듯 오디션 열풍은 수년간 이어질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장수하기 위해서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사후 조치가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형태의 포맷을 반복하면 삼류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제작진은 포맷 수입이나 모방에 힘을 쏟기보다는 새로운 포맷에 대한 시도로 대중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며 “‘일단 시작하고 보자’는 안일한 제작 관행에 밀려 스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핵심은 일반인을 얼마나 스타로 만들어 줄 수 있느냐다. 지금처럼 제작에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 출연자에 대한 사후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톱 가수를 관리하고 있는 매니저는 “초반에는 누가 스타가 될지 관심 있게 지켜봤다. 하지만 체계적 훈련 없이 음반을 내고, 특정 방송사가 배출해 낸 스타는 타 방송사에 출연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가 된 그들은 더 이상 위협적 존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위탄’이 낳은 스타들로 인해 긴장하는 기획사는 거의 없다. 스타 메이킹 프로그램이 진정한 스타를 낳고 있는지 방송사가 고민해 봐야 할 때”라고 일침을 가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