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진주의 병명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3개월동안 집중치료를 해온 의사들도, 우리나라 최고 의사들이 모인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도….
같은 시간 서울 A병원 중환자실. 사흘 전 폐 이식 수술을 받은 진주 엄마 백모(32)씨는 겨우 의식을 찾고 있었다. 진주처럼 엄마도 폐가 무섭게 딱딱해져 호흡을 해도 산소가 체내로 공급되지 않는 위급한 증세였다. 이미 그녀의 폐 기능은 지난달 모두 상실됐다. 생명은 피를 체외로 빼내 산소를 공급한 뒤 다시 체내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겨우 유지돼왔다.
21일 오후 백씨 옆 침상엔 똑같은 증세를 앓는 첫째 딸 주영(6)이가 누워 있었다. 갑자기 증세가 급격히 악화되자 의료진이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 외부에서 산소를 공급하는 방식마저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세 모녀가 사경을 해매는 동안 가족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회복실에 들어간 신씨에겐 진주의 사망 소식도 알리지 못했다.
육군 28사단에 근무하는 아빠 전모(38) 상사는 초췌한 얼굴도 목 놓아 울었다. 자신을 제외한 온 가족의 생사가 백척간두에 놓인 다급한 상황은 군인의 강건함도 허물어버렸다. 석 달째 병원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진주 아빠는 산송장 모습이다.
진주 가족이 사경을 헤매도 있는데도 질병관리본부는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다”며 역학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본부 측은 미확인 급성폐질환이란 애매한 병명을 둘러대며 “감염이나 바이러스 전염에 의한 발병은 아니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아내와 아이가 사경을 헤매는 데 가족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천문학적인 수술비와 입원비다. 일주일에 입원비만 1000만원, 폐이식 수술비가 7000만원인데 건강보험은 적용조차 되지 않는다. 백씨 수술비는 대출을 받아 겨우 해결했다. 주영이까지 수술을 받으면 이들 가족은 파산으로 내몰리게 된다.
캄캄한 어둠을 만난 진주 외할머니 정진숙 씨는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손녀였는데...’로 시작되는 장문의 글은 세 모녀의 사연이 담겼다.
정 씨는 ‘원인도 모르고 치료방법도 없이 폐가 점점 굳어져서,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이런 일이 어떻게 한 가정 3명의 모녀에게 동시에 덮칠 수 있습니까?’라며 ‘이미 말라버려 흘릴 눈물’도 없다고 썼다.
“가버린 한 살배기 손녀의 똘망똘망했던 눈동자를 지금은 생각할 겨를도 없습니다. 아직 살려내야 할 큰 손녀와 내 딸이 저리 누워있기 때문입니다”
질병본부 관계자는 “폐가 굳어지는 섬유화가 진행되면 치료법은 폐이식 뿐”이라고 말했다.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주영이 상태가 좋지 않아 걱정”이라고 한 이 관계자의 말이 아빠 전 상사와 외할머니의 귀에 들릴까.
‘원인미상 중증 폐질환’으로 지금까지 발병한 환자는 8명이고 이 가운데 절반이 사망한 상태다(육군 홍보실 02-748-6760).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지영 기자 young@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