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에 입단한 박주영(26)이 31일 등번호 9번을 배정 받았다. 축구종주국 영국의 심장인 런던 연고팀 아스널에서 중심번호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박주영으로서는 마냥 웃을 수 없다.
이적 과정에서 발생한 프랑스 릴OSC와의 마찰 등으로 곤란한 처지에 있는 데다 무엇보다 아스널을 괴롭혀온 ‘등번호 9번의 저주’를 깨뜨려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통상 등번호 10번 전후의 선수들은 팀의 핵심 전력으로 인정받지만, 아스널 9번 선수들은 유독 ‘먹튀’ 계보를 이어왔다.
저주는 폴 머슨(43·은퇴)에서 시작됐다. 당시 미드필드 전력의 핵심이었던 그는 입단 10여년 만인 1995년 9번을 달았다. 그러나 알코올과 코카인 중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2년 만에 팀에서 떠났다. 그는 이후에도 꾸준한 음주와 도박으로 구설수에 올랐고 최근까지 “아스널이 4부리그 팀만 못하다”, “현역 시절 감독이 약물을 주입했다”는 폭언으로 아스널을 괴롭혔다.
머슨의 9번은 1997년 니콜라 아넬카(32·현 첼시)가 물려받았다. 아넬카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 우승의 주역 중 하나로 당시엔 촉망받는 신예였다. 승승장구하며 자만하던 그는 1999년 재계약 협상 중 돌연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로 달아났다. 이후 10년 넘게 ‘저니맨(이적이 많은 선수)’이라는 주홍글씨가 그를 따라다녔다.
1999년에는 크로아티아의 프랑스월드컵 4강 주역인 다보르 수케르(43·은퇴)가 9번을 달고 아스널에 입단했다. 그러나 22경기 8득점의 초라한 기록을 남기고 1년 만에 웨스트햄으로 떠났다.
수케르의 실패도 프란시스 제퍼스(30·현 셰필드 웬즈데이)에 비하면 봐줄만하다. 아스널은 2001년 당시 팀 사상 최고액인 800만 파운드를 들여 제퍼스를 영입하고 9번을 내줬다. 그러나 제퍼스가 세 시즌 간 남긴 기록은 22경기 4득점이었다. 팀 사상 최악의 9번이라는 오명을 남긴 것이다.
2004년부터는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28·현 AT마드리드)가 9번 저주를 이어갔다. 아스널은 레예스를 영입하기 위해 이적료 1000만 파운드를 지불했지만 그는 입단 이후부터 쉴 새 없이 “팀에서 떠나고 싶다”며 불만을 늘어놨다. 결국 레예스는 2006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꿈’을 이뤘다.
이어 같은 해 레알 마드리드 공격수 줄리우 밥티스타(30·현 말라가)가 레예스의 9번 유니폼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10골이라는 다소 부진한 기록을 남기고 1년 만에 원 소속팀으로 돌아갔다.
2007년에는 에두아르도 다 실바(28·현 샤흐타르 도네츠크)가 9번을 달았다. 그러나 2008년 2월 상대 선수의 태클로 정강이뼈가 부러져 1년간 그라운드를 떠났고 복귀 후에도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결국 지난해 7월 팀을 떠났다.
이후 1년간 주인을 찾지 못했던 아스널의 9번은 이제 박주영에게 넘어갔다. 박주영은 한국(FC서울)과 프랑스(AS모나코·이상 등번호 10번)보다 상대적으로 큰 잉글랜드 무대에서 중심번호를 유지한 만큼 징크스 해소 차원을 넘어 팀의 핵심 전력으로 자리 잡아야하는 현실적 과제를 풀어야 한다.
그가 골과 어시스트 등 확실한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아스널을 오래 괴롭혀온 9번의 저주를 끊은 첫 선수로 영원히 기록될 수 있다. 공격수 로빈 반 페르시(28)와 미드필더 안드레이 아르샤빈(30) 등 전 소속팀보다 앞선 전력의 아스널 동료들을 활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