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천상배우’라는 수식어가 붙는 연기파 배우 박희순. 영화 ‘의뢰인’에서 날카로운 검사로 분해 냉철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모두를 압도했고, 영화 ‘가비’에서는 고종 역을 맡아 흔들리는 눈빛만으로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표현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 ‘간기남’으로 우리 곁을 찾았다.
‘간기남’(감독 김형준, 제작 트로피엔터테인먼트)은 간통현장을 잡으려다 의문의 살인사건에 휘말린 형사가 살해당한 남자의 아내와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을 담는다. 박희순은 간통 전문형사 선우로, 박시연은 살인사건의 키를 쥔 미망인 수진으로 분해 극을 이끈다.
이번 작품은 ‘간통’이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과 박시연의 파격 노출로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박희순은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 “노출 수위가 세지 않다. 박시연 목선까지만 보인다”며 “영화에 대해 제발 기대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막상 뚜껑이 열리자 영화는 박시연의 대역 없는 전라노출은 물론 기대 이상의 코믹함과 스릴러가 어우러져 ‘상업영화로서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 박희순은 뒤늦게야 “영화에 대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에 기대치를 낮추고자 한 것이었다”며 애교 섞인 변명을 내놓았다.
그가 이런 전략을 펼친 것은 전작 ‘가비’의 흥행 실패로 자신감이 많이 낮아진 상태였고 자식 같은 영화가 관객에게 또한번 외면 받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작전(?)은 통했다. ‘간기남’은 현재 개봉한 한국영화 중 1위라는 성적을 기록하며 객석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100% 만족시킬 수 없듯 약간의 아쉬움은 있다. 반전이라면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선우의 캐릭터 변화는 전후 설명이 충분치 않아 쉽게 이해가 가지 않고, 스토리가 촘촘하지 않고 다소 끊어지는 느낌이 든다. 박희순도 이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저도 완성본을 보고 난 후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이 있었습니다. 선우가 왜 간통 전문형사가 됐는지, 어떤 억울한 누명을 쓴 건지 등에 대한 부분이 모두 편집돼 ‘이해하기 쉽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선우의 시점에서 그런 것을 모두 담다 보면 오락영화로서 가져야 할 재밌는 부분을 살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희순은 이번 작품에서 기존의 지적인 이미지를 벗고 변화무쌍한 표정 연기와 몸 개그 등을 선보이며 코믹한 캐릭터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다. 진지할 것 같던 그가 툭툭 던지는 코믹한 대사는 예상 밖의 웃음을 선사한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경찰이다 보니 상황에 따라 진지한 카리스마를 뽐내기도 한다. 코믹과 진지함의 무게 조율 역시 하나의 과제였다.
“영화가 코믹미스터리스릴러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기에 너무 진지해도, 코믹해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방방 뛰는 캐릭터의 느낌을 살리되, 경찰서 신에서는 김정태, 이한위 씨 등 워낙에 재밌는 분들이 많이 등장하니 제가 가진 코믹함을 줄였습니다. 작품 전체에서 다 같이 어우러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박희순은 자신보다 작품을 더 사랑하는 배우다. 본인의 캐릭터가 돋보이는 것보다 작품이 잘되고 그 안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전작 ‘가비’의 경우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곤룡포를 입고 등장해 진실성 있는 연기를 펼친 그의 연기는 호평받았다. 하지만 박희순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며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작품이 좋고 모두 칭찬받는데 저 혼자만 욕을 먹으면 속상하겠죠. 하지만 작품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은데 저 혼자만 칭찬받는다면 ‘넌 살았어’라고 말해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다함께 노력했고 애정을 담아 만든 작품이고 정말로 그 작품을 사랑했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어느덧 연기 인생 10년 차인 그는 그간 쉼 없이 달려왔다. 이제는 자신을 돌아보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1년에 하나를 하더라도 흥행성과 작품성을 지닌 영화를 신중하게 선택할 것입니다. ‘의뢰인’ ‘가비’ 등 전작들이 크게 성공하지 못했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시간을 갖고 배우로서 걸어온 삶을 되돌아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 사진=박효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