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 영수는 집에서 떨고, 때린 아이들은 학교 다니고…”

“맞은 영수는 집에서 떨고, 때린 아이들은 학교 다니고…”

기사승인 2012-07-10 10:36:01

[쿠키 사회] 서울 개포동 A초등학교 6학년생 영수(가명·사진)가 다섯 명의 급우들에게 둘러싸여 폭행당한 것은 지난달 19일이었다. 음악시간이 끝나고 교사가 밖으로 나간 사이 교실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저항하거나 달아날 수 없도록 급우에게 팔을 잡히고 폭행당한 영수는 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영수의 1차 진단 결과는 전치 12주, 2차 진단 결과는 전치 7주 이상이었다. 성인이라면 가해자에 대한 구속 수사가 가능할 정도로 폭력의 수위는 결코 낮지 않았다. 학교는 곧바로 교감과 교사, 학부모, 경찰, 의사 등 폭력대책위원회 위원들을 소집했다. 영수와 부모에게 폭행 당시만큼이나 지옥 같은 하루하루가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맞은 게 죄냐”… 피해자의 진짜 고통은 이제부터

피해자 진술을 위해 폭력대책위원회에 참석한 영수 어머니 B씨는 분노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술 시간이 개인별로 동등하게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상대적으로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많은 집단 폭행사건의 경우 가해자의 진술 시간이 가해자의 인원만큼 길다는 점을 B씨는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

B씨는 “피해자와 가해자 학부모 한 사람당 한 시간씩 진술 기회를 얻었다. 한 명이 다섯 명에게 맞았으니 진술 시간은 피해자에게 한 시간, 가해자에게 다섯 시간이 주어진 셈”이라며 “가해자가 많을수록 진술 시간도 늘어나는 조사 방법을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당하게 가해자로 지목됐다면 소명할 기회를 줘야겠지만 피해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수의 부모는 가해 학생들의 전학을 요구했으나 학교 폭력대책위원회는 전학 조치하지 않고 최대 30시간 심리치료 징계를 내렸다. 영수의 부모는 이에 반발, 서울시 아동청소년담당관실 학교폭력지역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방침이다. 피해자가 재심에서 나온 처벌 결과를 납득하지 못할 경우 행정소송을 통해 해결할 수 있지만 보통의 피해자라면 이런 과정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기 마련이다.

영수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영수의 아버지 C씨는 “아들은 팔이 부러지고 폭행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두려움에 몸서리치는데 가해 학생들은 심리치료 수준으로 끝난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아들이 학교폭력에 희생된 사실도, 우리가 억울함을 직접 해소해야 한다는 사실도 모두 서럽다. 맞은 게 죄는 아니지 않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피해자든 가해자든 소명의 기회가 있어야 한다.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지만 가해자로 잘못 지목되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폭력대책위원회의 징계 결과에 대해 피해자가 재심 청구와 행정소송으로 해결할 수 있다. 현재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조치는 행정소송 뿐”이라고 설명했다.

“맞은 영수는 집에서 떨고, 때린 아이들은 멀쩡히 학교에…”

학교 폭력대책위원회는 가해 학생들 중 폭행 가담 정도에 따라 두 명에게 30시간 심리치료, 한 명에게 10시간 심리치료, 다른 한 명에게 1호 조치(서면 각서) 징계를 내렸다.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한 명의 경우 폭력대책위원회 조사를 통해 무혐의 처리됐다. 징계 결과는 최종 확정될 경우 교육과학기술부 훈령 239조에 따라 생활기록부에 기록된다. 가해 학생들은 향후 5년간 진학이나 학교생활에서 이 기록의 영향을 받게 된다.

문제는 영수다. 영수는 현재 퇴원하고 집에서 회복 중이다. 부러진 팔과 멍 자국을 회복하는 것만큼이나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수는 하루하루를 고통과 싸우고 있다. 더욱이 교실로 돌아가면 직접 폭력을 휘두른 급우들은 물론, 간접적으로 폭행에 가담한 급우들까지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영수에게 작지 않은 공포다.

어머니 B씨는 “맞은 아들은 집에서 떨고 있는데 때린 아이들은 지금 멀쩡하게 학교를 다닌다”며 “학교는 영수가 회복할 때까지 집에서 요양해도 교사 파견 등을 통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할 수 있다고 했지만,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등교할 수 없는 상황이 상식적인가”라고 반문했다.

영수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역 여론은 들끓었다. 학부모와 지역주민 등 100여 명은 가해 학생들의 전학을 요구하는 서명에 동참했다. 이들의 서명은 영수 부모의 재심 청구 증빙서류로 제출될 계획이다. 임원 학생 및 6학년생의 학부모들은 9일 학교에서 교장을 만나 재발방지책을 촉구했다. 학부모들은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가해자 징계는 실효성이 없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넥스트로 법률사무소의 박진식 변호사는 “최근 학계에서 현재 사법체계로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모두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며 “학교폭력에서 처벌보다 개선을 중요하게 여기는 ‘회복적 사법’을 옹호하는 입장도 있지만 가해자를 강력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주장이 현직 교육자와 법조인들을 중심으로 강하게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김철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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