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담배 가게에는… 어? 여기 약국이야?”

“우리 동네 담배 가게에는… 어? 여기 약국이야?”

기사승인 2012-09-26 22:04:01
[쿠키 사회] 지난 25일 찾은 서울 무교동의 H약국. 약품 판매대 양쪽 담배진열대에 국내·외산 담배가 빼곡히 진열돼 있었다. 70대 여자 약사는 진열대에서 국산 담배 하나를 재빨리 꺼내 40대 한 남성에게 팔았다.

국민일보 취재진이 ‘금연에 도움 되는 치료제를 달라’고 하자 그 약사는 몇 가지 금연패치와 금연껌 등을 내놓았다. H약국 출입문에는 ‘중구보건소 대사증후군 예방관리 협력약국’이라고 적힌 팻말이 붙어 있었다.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이는 대사증후군은 흡연이나 간접흡연이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와 있다.

서울 동자동 K약국은 편의점처럼 천장에 담배진열대를 설치하고 팔았다. 출입구에 ‘담배판매인중앙회’가 새겨진 담배판매 표시판이 게시됐다. 국민 건강과 보건 향상에 막중한 책임이 있는 약국에서 인체에 유해한 담배와 이를 끊는 금연보조제를 함께 파는 ‘웃지 못할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판매 행위를 하는 약국이 서울에만 21개 자치구에 73곳이나 된다.

서울시는 최근 25개 자치구 내 편의점 등 담배 소매인의 불법 담배광고 실태조사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파악했다고 26일 밝혔다. 시는 서울시약사회에 ‘자진 폐업 등 자정노력’을 요청하는 권고문을 발송한 상태다.

2004년 6월 시행된 ‘담배사업법 개정 시행규칙’ 7조 3항(담배 소매인 지정 기준)에 따르면 ‘약국, 병원, 의원 등 보건의료 관련 영업장은 담배 소매의 부적정 업소’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법 개정 전 해당 지자체로부터 담배 소매인 허가·등록을 받은 약국들은 ‘법 소급 미적용 원칙’에 따라 여전히 담배를 팔고 있는 것이다. 현행법상 ‘규제 사각지대’다.

해당 약국들 상당수는 “담배 판매 수입이 약국 경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 쉽게 포기 못 한다”며 계속 판매할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시 건강증진과 한 관계자는 “준(準)의료인으로서 건강을 위협하는 담배를 계속 파는 것은 약사의 도덕성과 약국의 신뢰성을 의심케 한다”고 지적했다.

담배사업법을 관장하는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기득권의 강제 제한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일정 유예기간을 둬 자진 폐업을 유도한 뒤 영업 제한을 강제하는 담배사업법 시행규칙 개정을 조만간 기획재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다. 대한약사회 한 관계자는 “전국 시·도 단위 약사회를 통해 해당 약국들에 담배 영업을 자진 폐업토록 계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김철오 기자
twmin@kmib.co.kr
김철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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