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에서 계속
[인터뷰] 가수로 돌아온 김영호의 언변은 뛰어났다. 그만큼 그의 머리 속에는 쌓여있는 것이 많았다. 자신의 삶, 생각, 주변 사람들에 대해 그는 강약조절을 하며 이야기했다. 자기만의 세계가 있지만, 동시에 감성을 거기에 녹였다.
▲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는 어떤 상황이었나요?
“저 같은 경우는 보컬로 시작한 게 아니라 기타로 먼저 음악을 했어요. 제가 가르친 뮤지션 중 대한민국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된 후배도 있죠. 처음에는 기타를 치다가 중간에 보컬로 바꿨어요. 그 이유는 기타는 계속 쳐도 비슷한 형태의 음악이 나오는데 목소리는 멋있게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득음’하는 순간이 올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20대 때는 하루에 적게는 10시간, 많게는 16시간 동안 노래만 불렀어요. 밴드 친구들과 지하에 음악실을 만들었는데 돈이 부족해서 달걀판을 반밖에 붙이지 못했어요. 사실 그 공간은 소음이 크지 않아 안 붙여도 되는 공간이었는데 연습실다운 느낌을 내기 위해 붙였죠. 20대 때는 그랬어요.”
▲ 그렇게까지 열심히 연습했는데 왜 가수로 데뷔를 하지 않고 배우로 데뷔했나요?
“제가 젊었을 적인 80년대 중반엔 밴드로 노래를 부른다는 게 굉장히 힘들었던 시절이었어요. 왜냐면 전국에 밴드는 무지 많은 데 비해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가수는 변진섭, 이문세 같은 솔로 발라드 가수였기 때문이에요. 또 제 외모가 솔로로 데뷔하기에는 조금 어울리지도 않았죠.(웃음) 저는 뒤에 세션이 있고 앞에서 노래 부르는 제 모습이 좋았어요. 그래서 솔로 가수로 데뷔를 안 한 거죠. 그래도 고향인 충북 청주에서는 ‘음악인’으로 통했고, 또 소년소녀 가장을 위한 자선공연도 8년 정도 했었던 경험이 있어요.”
▲ 음악을 좋아했으니 배우로 생활하면서 음악 욕심을 억누르기가 어려웠을 것 같군요.
“촬영장에서 아침부터 노래를 흥얼거려요. 그러면 사람들이 살며시 다가와서 제가 무슨 노래를 부른지 엿들어요. 노래 부를 때가 제일 좋은데 노래를 하면 따로 별 말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에요. 노래는 그저 부르면 다 알게 되고 통할 수 있는 소통의 장치에요. 거기에 멜로디까지 있으니 좋죠.”
▲ 현재 진행 중인 시나리오도 진지하고 서정적인 부류의 작품인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시나리오는 코미디 장르로 만들 생각이에요.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싸움이 나더라도 멋있게 오해를 풀고 화해하지만 사실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잘 풀지 못해요. 또 오해가 생겼다고 해서 영화처럼 멋있게 결투를 하거나 그러지는 않죠. 보통 사람들은 자존심을 가지고 있고 또 화해하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렇게 일상의 소소한 내용을 주제로 코미디 시나리오를 만들 예정이에요.”
▲ 사람들이 김영호라는 배우(가수)를 보면 선이 굵다고 생각하죠. 그런 선 굵은 모습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20대 때는 여행과 독서로 인생을 보냈고, 30대 때는 연극배우가 되면서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좋아했어요. 또 철학자 칸트의 심리학과 인간의 변화에도 관심이 많았죠. 공산주의 이론, 유토피아, 카를 마르크스, 레닌 등을 좋아하면서 철학과 종교학 분야에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어요. 연극배우가 되면서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섬세한 감성에 관심을 두게 됐어요. 특히 일본의 진지한 만화는 소설만큼 정말 좋더라고요. 100권짜리 만화책을 사흘 동안 읽고 인간의 디테일한 감정이 만화에 자세히 표현됐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죠. 30대 때 일본 만화를 약 4~5000권 읽었던 것 같아요. 연극배우 할 때 오후 8시에 공연이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만화책을 방에 쌓아놓고 읽은 거예요. 그렇게 10년 가까이 만화책을 읽었는데 그런 것이 자연스레 몸과 마음에 밴 것 같아요.”
▲ 단순히 그것만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20대의 정서는 그 이전 10대 때 형성이 되니까요.
“본래 태어나길 서럽게 태어났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는 것은 숨겨진 영혼을 찾는 작업이고 글 쓰는 것은 가볍게 생각들을 표현하고 정리하는 것이죠. 가정사를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가진 것보다 못 가진 삶을 살았어요. 보통은 흰 고무신을 신는데 저는 검정 고무신을 신어야 했고, 책가방도 없어서 보자기에 책을 싸서 학교에 갔어요. 또 집에 먹을거리가 없어서 친구들이 고구마를 쪄와 학교에서 먹는데 저는 그마저도 못 먹었어요. 딱 저만 가난하다는 게 티가 날 정도였으니까요. 또 물감을 가져오지 못해서 복도에 나가게 되면 참 서러웠어요. 아이였으니까 아픈 것보다는 불만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화가 났죠. 그래서 가끔은 복도에 앉아 있다가 그냥 학교를 박차고 나간 적도 여러 번 있었어요. 그런 이유로 어렸을 때부터 또래들과는 생각이 달랐는데 그런 환경을 받아들이기에 제 성격은 강했던 편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주위 친척들이 저희와 단절해 버리더라고요. 원래의 제 모습은 아닌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상황이 돼버리니 방황을 많이 했었죠. 그래서 어렸을 때는 살짝 나쁜 길에 빠질 뻔 했지만, 기본적으로 정(情)이 많아 때리지는 못했어요.(웃음)”
▲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의외인 것이, 외적으로 느껴지는 모습은 여러 모임을 만들고 거기를 주도할 것 같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이 모이면 서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니 저는 조용히 듣는 편에 속해요. 조용히 있다가 아무도 모르게 가버리는 스타일이죠. 어느 날 보니 후배들이 조용히 있는 저를 계속 신경 쓰더라고요. 화난 줄 알고 불편하게 느낀 거예요. 이상하게 저랑 있으면 눈치가 보인다고 그래요.”
▲ 모든 것을 쏟아내는 스타일인데 노래를 부를 때는 어떤 마음인가요?
“저는 노래 하나를 부르더라도 다 끝날 것처럼 불러요. 에너지를 아껴두지 않는 거죠. 성격상 열정을 다해 내놓지 않으면 무언가 미안하기도 해요. 사실 열정을 다 쏟아내도 쓰러지지는 않아요. 워낙 오랫동안 무대에 서면서 익숙해졌기 때문에요. 지금은 한 번 쏟아내면 오히려 속이 더 시원해져서 다음 노래를 더 잘해요. 전 곡을 잘 불렀으니 다음 곡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죠.”
▲ 딸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데, 앨범에 대한 반응은 어떤지요?
“어렸을 때부터 제 음악을 듣고 자랐으니 특별한 반응은 없어요. 객관성 없이 ‘아빠 멋지다, 아빠는 롤모델, 최고의 사람’이라며 치켜세워주죠.”
▲ 노래를 불러줄 정도면 자상한 아빠일 것 같은데요.
“한번은 ‘아파도 삶이다’고 딸한테 말해준 적이 있어요. 아파도 피하지 말고 그것도 삶의 한 조각이며 행복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라는 의미였죠. 잘 이겨내면 하나의 행복이 될 수 있다고 한마디 해줬어요. 대화는 잘 안 하지만 매일 시를 써서 SNS 메신저로 보내줘요. 그러면 딸이 피드백을 해주죠. 요즘은 너무 많이 시를 보냈는지 답장을 안 하더라고요.(웃음)”
▲ 콘서트 계획은 없으신지요? 콘서트를 열어도 충분한 수의 곡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전의 곡들은 리메이크곡이 많아요. 최소한 스스로 부른 곡이 10곡은 돼야 콘서트를 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두 번 정도 미니앨범을 더 발매하고 가을쯤 콘서트를 할 생각이에요. 이미 공연장은 알아보고 있고요. 공연장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중극장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 배우가 아닌 가수로서의 김영호는 앞으로 어떤 행보를 걸을까요.
“음악을 제대로 하게 된다면 콘서트장에서 팬들과 만나고 싶어요. 목소리를 통해 공연하고 싶어요. 악기 뒤에 숨는 게 아니라 목소리를 앞에 세우고 음악을 뒤에 두고 싶어요. 때로는 강하게 샤우트도 하고 가끔은 여리면서 서정적기도 하고. 또 제가 가진 경험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내는 팬들과 소통하는 콘서트를 하고 싶어요. 연주자들은 계속 공연하고 가수는 관객과 얘기하고 같이 노래도 부르면서요. 그러면서 재밌는 콘서트를 펼쳐 보이고 싶어요. 클래식 공연처럼 곡 설명도 해주고 자연스레 얘기하는 편안한 콘서트를 하는 게 꿈이에요. 콘서트 기대 해도 좋을 거예요. ‘그 사람 노래 잘한다. 참 좋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에요. 중견배우가 앨범을 낸다는 건 힘든 모험인데 그런 모험을 믿어준 분들에게 훌륭한 콘텐츠와 노래로 보답하고 싶어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 사진 박효상 기자, 정리 오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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