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바일로 몇 번만 누르면 전 세계 어디든 표를 살 수 있는 시대. 그럼에도 서울 중구 서소문 대한항공빌딩 9층, 항공사 오프라인 예약 발권센터에는 여전히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노년층부터 외국인, 현장 결제를 원하는 여행객까지, 이곳은 단순한 발권 창구를 넘어 여행의 시작점이자 ‘마지막 남은 아날로그’ 공간이었다.
우리나라 항공사 중 공항을 제외한 곳에 오프라인 예약 발권센터(중앙매표소, 이하 센터)를 운영하는 곳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뿐이다. 대한항공은 1969년 창립과 함께 서울 중구 소공동에 첫 시내 센터를 열었고, 이후 서소문 센터를 포함해 여의도·명동 등 주요 거점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모바일 기술의 발전으로 내방객이 줄면서 점진적 축소 운영을 했으며 현재는 서소문 센터만 남았다.
아시아나항공도 1988년 창립과 함께 서울 중구 회현동에 센터를 열었으나, 대한항공과의 통합 절차에 따라 지난 11일부터 서울 중구 서소문 대한항공빌딩 9층으로 이전해 단일 센터로 운영 중이다. 운영 시간은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이마저 대한항공과의 합병 절차가 마무리되면, 2027년부터는 대한항공 측 센터만 운영될 예정이다.

대한항공 관계자에 따르면 내방객의 77%는 인터넷 사용이 어려운 고령층이며, 한국 방문 중 귀국 일정 변경을 위해 찾는 외국인 고객이 약 10%를 차지한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도 “노년층이나 IT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객이 주로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발권, 마일리지 상담, 현장 결제 등 복잡한 절차를 직접 처리하려는 수요가 꾸준하다는 것이다.
“얼굴 보고 얘기하니 안심된다”는 고객들
12일 오전 10시, 센터에 들어서자 은행 창구처럼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비교적 한산한 내부엔 60대 이상 노년층이 주를 이뤘다. 이들 외에도 외국인이나 마일리지 관련 문의를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 보였다. 여권만 들고 온 고객에게 직원은 가격, 오프라인 예매 수수료, 비자 여부와 왕복 티켓 필요성까지 일일이 안내했다. 한 직원은 편도만 발권하려는 고객에게 “왕복 티켓이 없으면 입국이 거부될 수도 있으니 잘 알아보셔야 한다”며 친근하게 조언했다.
경기도 평택에서 온 이순자(76·여)씨는 “처음 해외여행을 가는데 항공권 예매부터 막막해 직접 왔다”며 “직원과 대면하며 항공권 예매 외에도 비자 등 궁금한 것들을 같이 물을 수 있어 먼 걸음을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마일리지 처리를 문의하러 온 문호경(63·남)씨도 “전화로 물어보려고 하다가 근처에 사무실이 있는 걸 알고 바로 왔다”며 “우리들은 얼굴 보고 얘기하는 게 가장 편하다”고 말했다.

물론 만족한 고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김준철(78·남)씨는 “여기서 표를 끊으려 했는데 서비스 이용료도 받고, 딸한테 물어보니 가격도 인터넷 저가항공보다 훨씬 비싸다고 해 포기했다”며 발길을 돌렸다. 미국에서 온 최정희(88·여)씨도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센터 두 곳에서 상담받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는 “인터넷으로 하면 수수료를 안 받는다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인터넷을 못하고, 신뢰할 수가 없다”며 “그래서 오프라인으로 직접 왔는데 10분 얘기하고 표 끊는 걸로 무슨 수수료를 받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센터에 방문해 오프라인으로 티켓을 발권할 시 별도의 서비스 수수료를 부과한다. 대한항공의 서비스 수수료는 국내선 5000원, 국제선 30000원이며 아시아나항공도 동일하다. 온라인 예매 시에는 이러한 수수료가 없다.
방문 번거롭지만, 시니어 고객에겐 그만한 가치있어
이 같은 불만에도 불구하고, 업계는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해 오프라인 창구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본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측은 오프라인 창구만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강조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직접 방문의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대면 상담에서 오는 신뢰감과 맞춤형 서비스 덕분에 찾는 분이 많다”며 “센터는 디지털 약자를 포용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 역시 “시니어 고객이나 IT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을 위해 쉽고 친절한 설명을 제공해 커뮤니케이션 불편을 줄이고 있다”고 밝혔다.
김광옥 한국항공대 항공경영전공 교수는 “단순히 표를 판매하는 창구가 아니라 고객관계관리(CRM) 거점”이라며 “한 번 잡은 고객을 평생 유지하는 전략적 플랫폼”이라고 평가했다. 센터는 특히 고령층이나 디지털 취약계층에 심리적 안심과 맞춤형 여정 설계가 가능한 유일한 창구라는 것이다. 그는 “나이 든 분들이나 문맹, 디지털 약자들은 항공 여행 과정에서 언어·기기 사용에 어려움이 많다”며 “이들에게 발권센터는 단순 종이표가 아니라 안전성과 편의를 제공하는 서비스”라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같은 풀 서비스 항공사(FSC)는 장기 고객 가치를 중시해 창구 운영이 가능하지만, 저비용항공사(LCC)는 비용 구조상 유지가 어려워 이런 센터 운영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