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는 미국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인식이 그대로 나타난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제일 큰 문제는 미국”이라며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국제사회에서 미국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언급도 수차례 했다.
우선 노 전 대통령은 “우리 남측 국민들에게 여론조사를 해봤는데, 제일 미운 나라가 어디냐고 했을 때 그 중에 미국이 상당 숫자가 나옵니다. 또 동북아시아에서 앞으로 평화를 해롭게 할 국가가 어디냐, 평화를 깰 수 있는 국가가 어디냐 했을 때 미국이 1번으로 나오고, 제일 많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지목했습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반감도 표시했다. 그는 “제국주의 역사가 세계 인민들에게 반성도 하지 않았고, 오늘날도 패권적 야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점에 관해서 마음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저항감도 가지고 있습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한·미 군사당국의 대비계획인 ‘작계 5029’에 대한 언급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작계 5029라는 것을 미측이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가는데… 그거 지금 못한다. 이렇게 해서 없애버리지 않았습니까”라고 했다. 미국이 2005년 초 북한 급변사태 발생 때 군사대응 방안을 작전계획으로 수립하려 했으나 대한민국 주권을 침해할 요소가 있다는 우리 정부의 반대로 작계화 작업이 중단된 것을 언급한 것이다. 작계 5029가 거론되던 당시 북한은 “반민족적인 흡수통일 야망”이라고 강력 비난했었다.
미국의 주요 대북제재 중 하나였던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문제의식도 이번 대화록에 고스란히 실렸다. 그는 이를 “분명한 미국의 실책”이라고 규정했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11월 경주에서 열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BDA 문제를 놓고 1시간 이상 언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한국은 엄연한 친미국가라는 현실적인 인식도 보여줬다. 그는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국에 의지해왔습니다. 그리고 친미국가입니다. 이는 객관적 사실입니다. 해방, 분단정부를 세우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역사적으로 형성돼 온 것이어서 남측의 어떤 정부도 하루아침에 미국과 관계를 싹둑 끊고 북측이 하시는 것처럼 자주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또 BDA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미측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힘이고…”라고 인정했다. 개성공단의 물품반입 과정에서 미국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했고, 중국과 인도에 경수로를 수출하려고 해도 미국이 ‘오케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적시하면서 “기술의 격차에 의해서 도리 없는 종속이 발생하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또 “6자회담이 깨지면 안 되니까, 미국을 붙들고 같이 가야 한다”고 해 6자회담에서의 미국 역할에 대한 인식도 드러냈다.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