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성난 호랑이를 궁지로 몰고 놀리는 소년을 보는 듯 했습니다. 11일 영국 선덜랜드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사미르 나스리(26·맨체스터시티)를 도발하다 밀려 넘어진 기성용(24·선덜랜드)이 그랬습니다. 때린 나스리의 표정은 울상이었고 맞은 기성용의 표정은 당당했습니다. ‘어디 한 번 덤벼보라’는 듯한 표정이었죠. 두 선수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우선 올 시즌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의 초반 판세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맨체스터시티(이하 맨시티)는 지난 시즌에 준우승하고, 그 전 시즌에 우승한 프리미어리그의 신흥 강호입니다. 맨시티의 급성장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 왕가의 석유재벌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43)이 구단주로 나선 2008년부터 시작됐죠.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맨시티는 현재 프리미어리그에서 스타플레이어가 가장 많은 구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맨시티의 올 시즌 목표는 아마 리그 우승컵 탈환일 겁니다. 하지만 시즌 초반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죠. 지난 10라운드까지 거둔 성적은 6승1무3패(승점 19). 상위권은커녕 중위권에서 겨우 벗어난 성적이었습니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우승을 겨냥한 맨시티에는 망신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맨시티에 선덜랜드는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죠. 선덜랜드는 시즌 개막 72일 만인 지난달 27일에서야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첫 승(2대 1)을 거둔 리그의 최약체입니다. 지난 10라운드까지만 해도 중간전적 1승1무8패(승점 4)로 최하위보다 한 계단 높은 19위에서 맴돌고 있었죠. 맨시티의 입장에서 선덜랜드는 승점 3점을 빼앗고 리그 상위권으로 도약하기 위한 구름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막상 경기를 시작하니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선덜랜드는 맨시티를 무너뜨리기 위해 전력을 다했고 전반 21분 수비수 필립 바슬리(28)의 선제골로 먼저 승기를 잡았습니다. 맨시티는 이때까지만 해도 느긋했습니다. 적어도 한 골 정도는 언제든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선덜랜드의 골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급한 맨시티는 후반 종반부터 파상공세를 시작했죠. 선덜랜드의 골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습니다. 정규시간 종료를 5분여 남기고부터는 경기장의 선수 가운데 맨시티의 골키퍼를 제외하고 모든 선수가 선덜랜드의 골문 앞에서 슛을 때리고 막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래도 선덜랜드의 골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기성용과 나스리의 충돌은 이때 발생했습니다. 전후반 90분의 정규시간을 가리키는 전광판의 시계가 멈추고 장내아나운서가 추가시간을 알리기 직전인 후반 44분59초였습니다. 공이 선덜랜드의 골문을 벗어나 하프라인 근처까지 넘어간 상황이었죠. 공을 잡은 기성용은 하프라인에서 빠르게 역습을 전개할 기회를 잡았고 나스리는 이를 끊기 위해 몸싸움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기성용은 맨시티의 빈틈을 파고드는 척을 하다 공을 뒤의 동료에게 내줬습니다. 이에 화가 난 나스리는 몸으로 기성용을 밀어 넘어뜨렸습니다. 심판은 나스리의 반칙을 선언했죠. 기성용은 잠깐 항의하는 듯 하더니 말리는 동료와 함께 되돌아갔고 나스리는 억울한 표정과 손짓으로 기성용에게 계속 항의했습니다. ‘거기서 백패스를 하는 건 너무하잖아’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아마 맨시티 선수들을 도발해 깊은 좌절감을 안기기 위한 백패스였을 겁니다. 맨시티 선수들은 기성용이 역습 기회에서 공격을 시도하지 않고 백패스를 한 순간 설마 했던 패배를 피부로 느꼈을 겁니다.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상대를 도발할 줄도 아는 기성용의 재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죠. 3분 주어진 추가시간 동안 승부는 뒤집어지지 않았습니다. 선덜랜드는 강호 맨시티를 상대로 올 시즌 두 번째 승리(1대 0)를 쟁취했습니다. 맨시티는 1패를 더하며 리그 8위로 추락했고 선덜랜드는 19위를 그대로 지켰습니다.
기성용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계속 했다면 경기를 마친 뒤 뭐라고 적었을까요. 아마 나스리를 향해 이렇게 쏘아붙이지 않았을까요. “답답하면 너희가 이기든가.”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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