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취임 1년을 맞아 26일 이뤄진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는 커다란 후폭풍을 불러올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최근 신뢰를 토대로 한·일 관계 회복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 찬물을 끼얹었다.
◇정부 최고 수준의 강경대응, 아베 직접 겨냥=정부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사실상 도발 수준으로 규정했다. 대일 관계에서 정부 대변인 자격으로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직접 성명을 발표한 것도 처음이다.
유 장관은 성명에서 “아베 총리가 소위 ‘적극적 평화주의’란 이름 아래 국제사회에 기여하겠다고는 하지만 잘못된 역사관을 갖고 평화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성명에는 특히 ‘개탄’ ‘분노’ ‘수탈통치’ 등 그동안 정부 성명에서 보기 어려운 강도 높은 표현들이 대거 포함됐다. 아베 총리를 직접 겨냥해 ‘그의 잘못된 역사인식’ ‘시대착오적 행위’라고 명시한 것이나 ‘도조 히데키’ ‘고이소 쿠니아키’ 등 일본 A급 전범들의 이름을 성명에 직접 포함시킨 것도 극히 이례적이다.
그만큼 정부가 이번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으며, 대응 역시 최고 수준으로 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아베 총리 참배 직후 관련부처 간 긴급회의를 갖고 기존 외교부 대변인 성명보다 더욱 격이 높은 장관급 인사가 성명을 발표해 강력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앞서 아침 일찍 이병기 주일대사를 통해 아베 총리의 참배 예정 소식을 보고받고 주한일본대사관 측에 “가지 말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한·일관계 최악의 국면=정부 안팎에선 특히 최근 일본이 미국 등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한 것이 결국은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었느냐는 비판론도 팽배하다.
외교소식통은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며 “한·일 정상회담을 희망한다고 해놓고 신사 참배를 하는 것은 뒤통수를 치는 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일본의 책임 있는 정부 인사 또는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선 엄중하게 대응해왔다. 지난 4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의 신사 참배 직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일본 방문을 전격 취소할 정도였다.
이런 한국 정부의 입장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의 수반인 아베 총리가 직접 참배에 나선 것은 일본 정부가 앞으로 한·일 관계는 최악의 수준으로 가도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신사 참배에 따른 파장이 얼마나 클 것인지는 일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정부는 일본과의 관계에선 민감한 과거사 및 영토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세웠으나 향후 상당부분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일 정상회담 완전히 물건너가나=아베 총리의 참배 여파로 한·일 정상회담을 비롯한 양국간 정치분야 협력은 줄줄이 취소 또는 연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 소식통은 “이런 상황에서 정상회담은 나올 수도 없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일본은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줄곧 희망해왔지만 우리 정부는 일본 측의 역사인식 등에 근본적 변화가 없는 한 정상회담은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여기에 외교차관급 전략대화, 안보정책협의회 등 양국 간 추진되던 회의 역시 당분간 동결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