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상사·거래처·사장… 女風 거세다지만 술자리 성희롱은 여전

[기획] 상사·거래처·사장… 女風 거세다지만 술자리 성희롱은 여전

기사승인 2014-01-03 22:46:00

[쿠키 사회] 직장 회식 자리에서 알게 모르게 나타나는 성희롱적 표현에 마음 졸이는 여성들이 많다. ‘안녕’하지 못한 회식을 겪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항공사 입사 4년차인 A씨(29·여)는 지난달 말 부서 송년회에서 불쾌한 일을 경험했다. 한 여직원이 술에 취해 잠들자 남자 상사가 직원들에게 “예전 같으면 내가 데려가 잤겠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집에만 바래다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 있던 여직원들의 얼굴이 굳어지자 상사는 “웃자고 한 소리”라고 해명했다. A씨는 3일 “남자 상사의 말을 듣고 표정을 감출 수 없을 만큼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지방은행에서 기업금융을 담당하는 B씨(25·여)는 거래처와의 송년회에서 불쾌한 ‘스킨십’을 당했다. 거래 업체 남자 사장이 허리를 감싸 안거나 손을 잡았던 것이다. B씨는 조용히 손을 떼어놓거나 화장실에 다녀오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했지만 무례한 손길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회식 내내 그의 손을 붙들고 있어야 했다. B씨는 “나는 이 지점에서 몇 년 근무하고 말지만 그 업체는 십수년 거래해온 곳이어서 은행에 피해를 줬다는 소리가 나올까봐 참고 말았다”고 했다.

올해 대기업에 입사한 여성 C씨는 지난달 초 페이스북에 자신이 겪은 송년회 사건을 적었다. 회식 자리에서 남자 직원이 “여직원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아내가 질투하더라”고 하자 남자 팀장이 “지금은 젊으니까 그렇지 결혼 20년이 넘으면 밖에서 다른 여자랑 잘 때 피임은 하냐고 물어본다”고 응수했다. 그의 말에 A씨와 여직원들은 수치심을 느꼈지만 팀장에게 그런 감정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몰라 그냥 분을 삭여야 했다는 것이다.

C씨의 페이스북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한 지인은 ‘나도 최근에 직장 술자리에서 비슷한 일을 당하고 회사 성폭력상담실에 알렸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최선의 해결책이었는지 의문이 든다’고 적었다. 해당 남자 직원과 여직원들 사이가 껄끄러워지면서 사무실 분위기가 너무 어색해졌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명백한 성폭력의 경우 회사에 알려 징계 절차를 밟으라고 조언한다. 회식 당시 주변의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등을 증인으로 확보해 놓고 조사가 시작되면 자신의 입장에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진술하라는 것이다. 최근 업계가 사내 성폭력 징계를 강화하는 추세여서 징계 과정이 잡음을 빚는 경우도 많이 줄었다.

단순한 ‘말실수’로 판단된다면 명확하게 사과를 받고 재발 방지를 요구해야 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임유영 활동가는 “설사 실수라 하더라도 피해자는 분명히 존엄성에 상처를 받았고 이런 상황을 그냥 넘어가면 그 가해자는 반드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며 “진솔한 사과를 받는 게 본인의 감정은 물론이고 가해자를 위해서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성폭력 사건에 엄정하게 대처해온 회사라면 개인적인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받고, 만약 추후에 가해자로부터 뒷말이 나올 경우 공식 문제제기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요진 기자 true@kmib.co.kr
김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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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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