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미카엘 라우드롭(50·덴마크) 감독은 기성용(25·선덜랜드)의 원 소속팀이자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서 비교적 선방하는 중위권의 강자 스완지시티를 묵직하게 지키는 지도자입니다. 하루만 참으면 좋았을 텐데요. 라우드롭 감독은 ‘따뜻하지 않은 말 한 마디’를 성급하게 내뱉었다가 골로 대답한 기성용에게 망신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기성용은 12일 영국 런던 크라벤 코티지에서 열린 풀럼과의 2013~2014시즌 프리미어리그 21라운드에서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해 결승골을 넣었습니다. 스완지시티에서 잉글랜드 무대를 처음 밟은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기성용에게 득점 기록은 없었습니다. 선덜랜드로 유니폼을 갈아입고 절반의 일정을 소화한 올 시즌에는 벌써 세 골이나 넣었죠. 이날은 동료 공격수 아담 존슨(27)의 추가골까지 어시스트하며 프리미어리그 두 시즌 만에 가장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줬습니다.
라우드롭 감독을 향한 무언의 시위였을까요. 기성용의 화력 과시는 라우드롭 감독의 불편한 발언과 공교롭게 맞물렸습니다. 화근은 라우드롭 감독이 지난 11일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언론과 가진 인터뷰였습니다. 시즌 중반을 넘기면서 스완지시티 선수의 연이은 부상으로 불거진 기성용의 조기 복귀론에 대해 라우드롭 감독은 이렇게 말했죠.
“그렇다. 그리고 아니다. 물론 가능하지만 고려할 상황이 많다. 선덜랜드는 리그에서 최하위에 있지만 캐피탈원컵에서는 준결승 진출에 성공했고 기성용은 정상적으로 뛰고 있다. 기성용을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선덜랜드가 (캐피탈원컵에서) 결승 진출에 성공하면 기성용의 정신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여기까진 좋았습니다. 기성용을 1년 임대로 보낸 선덜랜드 구단과 약속을 끝까지 지키고 기성용에게도 우승을 경험할 기회를 주겠다는 원 소속팀 감독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발언이었습니다. 하지만 라우드롭 감독은 사족을 달았습니다.
“만약 복귀해도 기성용은 벤치에 앉거나 몇 경기에만 뛸 수 있을 것이다.”
기성용이 없어도 잘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죠. 라우드롭 감독은 올 시즌 초반인 지난해 9월 기성용을 선덜랜드로 보냈습니다. 올 시즌을 마치고 다시 데려와야 하지만 어쨌든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을 겁니다. 실제로 올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기성용의 공격 포인트는 잠잠했고 선덜랜드는 좀처럼 최하위에서 탈출하지 못했으니 라우드롭 감독의 판단은 아주 틀린 게 아닌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즌의 반환점을 앞둔 지난달부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선덜랜드의 거스 포옛(47·우루과이) 감독은 수비형 미드필더인 기성용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옮겨 잠재력을 끌어올렸습니다.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죠. 기성용은 지난달 18일 캐피탈원컵 8강전에서 강호 첼시를 무너뜨린 연장전 결승골(2대 1 승)로 잉글랜드 데뷔골을 넣었습니다. 선덜랜드는 여세를 몰아 지난 8일 4강 1차전에서 또다른 강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까지 격파했습니다. 결승 진출이 눈 앞입니다.
기성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27일 리그 18라운드에서는 중상위권의 강호 에버튼을 격침한 결승골(1대 0 승)을, 이날 리그 21라운드에서는 풀럼을 대파한 결승골(4대 1 승)을 연이어 몰아쳤죠. 한 달 만에 세 골입니다. 기성용이 골을 넣으면 선덜랜드도 예외 없이 이겼습니다.
라우드롭 감독은 뒤늦게 발동을 걸고 선덜랜드의 시즌 후반기 반격을 이끄는 기성용을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라우드롭 감독에게 선덜랜드는 어쩌면 빌려준 돈으로 뒤늦게 대박을 터뜨린 친구처럼 보일 수도 있겠죠. 기성용을 은근하게 깎아내린 듯한 말만 하지 않았어도, 일단 모든 질문을 뿌리치고 이날 경기를 지켜보기만 했어도 망신을 당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기성용도 한 가지를 느꼈을 겁니다. 역시 말보다는 행동이죠. 골은 트윗보다 더 강력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그라운드의 공통어입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