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직속기구인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UNCTAD)가 발표한 ‘글로벌 투자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버진아일랜드에 대한 FDI는 920억 달러로 세계 4위에 올랐다. 같은 기간 미국은 1590억 달러의 FDI를 유치해 1위를 차지했고 중국이 1270억 달러로 2위, 러시아가 940억 달러로 3위였다. 브라질은 630억 달러, 인도는 280억 달러로 집계됐다.
버진아일랜드로 유입된 해외 투자자금이 인도와 브라질을 합친 해외 투자자금 910억 달러보다 많은 것이다. 조세회피 ‘천국’으로 자리매김해 실체 없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 컴퍼니’만 가득한 버진아일랜드에 이처럼 많은 돈이 유입된 것은 조세회피나 불법자금 조성 등을 노린 다국적기업의 자금 탓이란 지적이다.
실제 FDI는 주로 국경을 넘어선 기업 인수나 해외 신규 프로젝트를 위한 기업 투자 등을 목적으로 조성되지만 버진아일랜드의 경우 대부분의 FDI 자금이 다국적기업의 계좌를 통해 단기 유·출입을 거듭한 것으로 파악됐다.
UNCTAD의 제임스 잔 투자기업국장은 “버진아일랜드에 다국적기업의 금고 역할을 하는 일부 금융회사들이 있다”면서 “세율이 높은 국가에 있는 계열사에서 흘러나온 뭉칫돈이 수익에 세금을 거의 매기지 않는 버진아일랜드로 유입돼 다국적기업의 이익이 창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조세회피 규제에 착수하면서 버진아일랜드에 회사를 세우는 다국적기업이 늘어나 이곳에 유입되는 FDI 규모도 증가 추세다. 버진아일랜드로 지난해 유입된 FDI 규모는 1년 전에 비해 40% 급증했다.
잔 국장은 “각국 정부가 이런 상황을 주시하며 다국적기업들의 자금이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버진아일랜드 등 5개국을 조세투명성 부문에서 국제적인 규정을 충족하지 못하는 국가로 평가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