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500억 달러(약 54조원)를 쏟아 부으며 소치올림픽에 ‘올인’하고 있는 러시아에 대해 국제사회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로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구상이지만 실상 세계 경제는 근래 들어 러시아 같은 신흥국 시장에 불리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어서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9일(현지시간) ‘소치올림픽이란 파티는 러시아가 처한 경제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과거 역사상 이벤트행사에 이처럼 거액의 현금을 쏟아 부은 나라는 없다”며 “소치올림픽이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07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직접 발로 뛰며 소치올림픽 유치를 성공시킨 뒤 이듬해 경기장 건설 등에 500억 달러를 투입했다. 중국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투입한 420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였다.
인디펜던트는 “자기 호주머니에서 나간 세금으로 화려하게 치러지고 있는 올림픽을 쳐다보며 러시아 국민들은 올림픽이 끝난 뒤 경제적인 보상을 바랄 것”이라며 “경제회복은 푸틴 대통령이 반드시 완수해야할 과제”라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도 당초 경제성장에 대한 자신감으로 2007년 올림픽 유치에 뛰어들었다. 당시는 푸틴 대통령은 2004년 두 번째 집권 동력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하던 때다. 러시아 경제도 푸틴이 권력을 잡은 2000년부터 2008년 금융위기 전까지 평균 경제성장률이 6.9%로 잘나갔다. 하지만 2009년부터는 내리 3년간 평균 경제성장률이 4.1%로 가라앉았다.
‘파티’ 초대장을 발송해 막대한 돈을 지출한 상황에서 국가 경제가 고꾸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지난해 미국의 돈 죄기(테이퍼링)가 시작되면서 잘나갔던 신흥국 시장이 휘청거리고 있다. 이른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을 일컫는 ‘브릭스(BRICs)’에서 자금이 앞 다퉈 나가고 있는 국면이다.
미국 달러화 대비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올 들어 6% 이상 하락해 최근 5년 사이 최저 수준이다. 이 기간 주식시장(RTS지수)도 10%가량 추락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소치올림픽 직후 발표될 러시아 1분기 경제지표가 지난해 4분기보다 훨씬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이슬람 무장세력은 올림픽을 계기로 폭탄 테러를 자행하며 정치적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소치에서 650㎞ 떨어진 볼고그라드에서 연쇄 폭탄 테러를 일으킨 이슬람 무장세력 ‘빌라야트 다게스탄’은 올림픽 기간 추가 폭탄 테러를 예고한 상태다.
FT는 “푸틴 대통령이 정치·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하면서 더더욱 올림픽에 매달리는 모양새”라고 꼬집었다. 올림픽을 잘 치러낼 경우 당장 경제 불안감을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소치에서 국가정상으로는 이례적으로 ‘우리’라는 말 대신 ‘나’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내가 직접 소치를 올림픽 개최지로 고른 만큼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는 게 즐겁다”는 식이다. 올림픽을 자신의 치적으로 삼고 있다는 평가다. 내심 4기 집권을 노리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 민심은 싸늘해지고 있다.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의 지난달 조사에 따르면 지금 대선이 치러질 경우 푸틴을 다시 뽑겠다는 응답자는 29%로, 1년 전 35%보다 크게 낮아졌다. 또 올림픽 개최가 ‘잘한 일’이라고 답한 사람은 53%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올림픽을 개최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응답이 26%,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21%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