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치킨 배달 종업원들의 비명… 범죄자 취급 '수모'도 겪어

[기획] 치킨 배달 종업원들의 비명… 범죄자 취급 '수모'도 겪어

기사승인 2014-03-14 19:34:00
[쿠키 사회] “어차피 나가는 길인데 이것 좀 버려주세요.”

올 초 한 아파트에 배달을 갔던 프랜차이즈 치킨점 종업원 최모(27)씨에게 집주인이 치킨 값과 함께 안긴 건 주둥이까지 꽉꽉 눌러 담은 쓰레기봉투였다. 지난해 하반기 기업 공채에서 낙방한 뒤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최씨는 이를 거절하기 어려웠다. 손님이 본사나 점장에게 항의할 경우 일자리를 잃게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최씨는 14일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는 태도에 화가 났지만 차마 싸울 수도 없어 그냥 꾹 참고 내려와 쓰레기를 버렸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트위터에도 최씨와 비슷한 사연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든 치킨 배달원을 만난 상황. 그는 치킨 대신 쓰레기봉투 든 손을 가리키며 “참 먹고 살기 힘들죠” 하면서 씩 웃었다고 했다. 네티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실제 배달종업원들은 이보다 더 황당한 일도 자주 겪는다.

마트에서 판매하지 않는 술을 사다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는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맥주 등 집 근체 가게에서 쉽게 살 수 있는 품목도 가격이 싼 매장을 지목해 “꼭 거기서 사오세요”라고 치킨 배달원에게 주문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담배는 물론 쓰레기 종량제 봉투와 여성용품도 치킨 배달원이 감당해야 하는 심부름의 단골 아이템이다.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당하는 수모도 겪는다. 치킨 배달을 하며 자식 둘을 키우는 한모(47)씨는 최근 한 아파트 단지에 배달하러 갔다가 집주인 얼굴도 보지 못했다. 초인종을 눌렀더니 “우유주머니에 넣어둔 돈을 가져가고 치킨은 문앞에 두고 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부러 모자나 마스크도 쓰지 않고 오토바이 헬멧을 벗은 채 환히 웃으며 인터폰으로 치킨을 들어 보여도 의심을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씨는 “세상이 삭막해져 매일 무서운 범죄가 발생하다 보니 고객들도 조심하는 게 이해는 된다”면서도 “다만 배달 종사자도 사람인데 인간 대접을 못 받는 것 같아 서운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한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관계자는 “현금이나 카드가 없어 통장으로 돈을 보내주겠다고 해서 계좌번호를 알려주고 왔는데 입금을 안 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교통사고가 발생해 찢어진 바지를 붙잡고 치킨을 배달하러 갔더니 치킨이 흐트러졌다며 새 것으로 다시 가져다 달라는 요구가 들어온 적도 있었다”고 했다.

이밖에도 배달이 늦었다는 이유로 반말과 욕설을 듣는 것은 예사고 심한 경우 멱살을 잡히는 등 폭력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옷을 거의 입지도 않은 채 문을 여는 바람에 배달원을 난감하게 만드는 일도 잦다. 이러다보니 배달원들이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아예 매장 대표가 직접 배달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요진 기자 tru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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