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정치 중심지 헤이그에선 전 세계 46개국 대표가 참석하는 1907년 제2회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다. 당시 고종황제는 이준, 이상설, 이위종 등 3명을 황제 특사로 임명해 만국평화회의 의장에게 친서를 전달하고 1905년 일제의 강압과 협박으로 체결된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주장할 것을 지시했다.
이준 등 3명은 그해 7월 고종황제의 밀서를 품에 간직한 채 2개월의 긴 여정 끝에 헤이그에 도착했다. 을사늑약이 황제의 의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강제로 체결된 조약이므로 무효라는 것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한국 독립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일본 대표단의 방해, 각국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 본회의장에 입장도 하지 못했다. 분함을 이기지 못한 이준 열사는 객지에서 숨을 거뒀다. 이 사건으로 일제로부터 퇴위를 강요받은 고종 황제는 결국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말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유럽을 방문하면서 헤이그의 이준 열사 기념관을 방문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당시 기자들에게 “1907년에는 나라를 빼앗긴 마당에 (헤이그 회의에) 입장도 안 시켜줘 그 분들 심정이 터질 것 같았을 것”이라며 “100년이 지난 후 우리 모습에 여러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 헤이그의 한 시립묘지에 묻혔던 이준 열사의 유해는 박정희 정권 때인 1963년 9월 30일 고국으로 돌아와 서울 수유리에 안장됐다.
헤이그는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갈등 때도 곧잘 거론되는 도시다.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의 법적인 해결을 주장하며 법적 해결 무대로 제시하는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이 곳에 위치해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