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정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인선을 앞두고 군 출신 인사의 독주 현상이 재연돼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외교안보 컨트롤타워 격인 국가안보실장은 물론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군 출신 인사들이 또다시 주도할 경우 외교안보정책은 균형점에서 더욱 멀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르면 26~27일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 후임 인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청와대 주변과 여권에선 김관진 국방부 장관 등 군 출신 인사가 차기 안보실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된다.
그러나 군 출신이 외교안보정책을 총괄 지휘하는 자리에 다시 임명되면 정보 편중 현상과 위기감 부각 등 부작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1년여간 청와대 외교안보장관회의 및 NSC 상임위 안팎에선 군 출신 인사(안보실장·국정원장·국방부 장관)들의 정보 독점과 외교·통일 라인의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개성공단 남북 실무회담에 나섰던 서호 수석대표 전격 교체, 지난 2월 천해성 국가안보실 안보전략비서관 내정 철회 등도 NSC의 군 독주에 따른 결과였다는 지적이 많다.
NSC 상임위에서도 군 출신 등 매파의 발언권이 커지면서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외교·통일 라인은 전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여권 관계자는 25일 “박 대통령이 ‘통일 대박론’을 천명했는데도 실제 대북정책에서는 전혀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가안보실이 너무 군사안보 측면만 부각한 데 따른 결과라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올 들어 국가안보실장은 NSC 상임위원장까지 겸하면서 한층 위상이 강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군 출신 인사들이 원칙론, 강경론을 펼치면 윤병세 외교부 장관, 류길재 통일부 장관,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등의 목소리에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은 빨리 없어져야 한다’ ‘큰 한 방을 준비하고 있다’는 등 군 당국이 필요 이상으로 북한을 자극하거나 위기감을 부각시키는 것도 군 특유의 안보인식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서울시 간첩 증거조작 사건, 북한 무인기 사태에 대한 미숙한 초기 대응 역시 그 기저에는 정보당국과 군의 과도한 독주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지난달부터 NSC 상임위에 고정 멤버로 참석하는 것도 군의 지나친 독점에 대한 견제용으로 보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자신의 통일 구상인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북측이 이를 강력 비난하면서 남북관계는 오히려 퇴보했다. 군대 스타일의 지나친 원칙주의, 일관된 강경 대응으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북한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군 출신이 사실상 모든 사안을 주도하면서 대북관계가 더욱 악화된 셈이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본격 가동도 못하고 묻힐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남북 간 신뢰를 바탕으로 북핵 진전 상황에 따라 대북 협력을 강화한다는 정책 방향이 꽉 막힌 원칙론 속에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것이다.
결국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에는 군사안보 분야 외에도 외교 및 통일 정책을 종합적으로 아우를 인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한 안보 분야 전문가는 “군사안보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착 상태인 남북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입체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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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쿠키뉴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