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생 박예슬양의 꿈은 패션디자이너였다.
지난 4월 14일에도 예슬양은 구겨진 종이와 청보라색 유리구슬을 그렸다. 그림 위에는 ‘4월 14일 박예슬ㅋ’라고 적었다.
이틀 뒤 전남 진도 앞 바다에서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세월호 사고였다. 그 배엔 예슬양도 타고 있었다.
세월호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故) 박예슬양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4일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서촌갤러리에서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17번 박예슬 전시회’가 열렸다.
64.5㎡(19.5평)의 작은 전시장은 예슬 양이 살고 싶은 집을 그렸던 도면을 바탕으로 공간을 배치했다. 여기에 예슬양이 유치원때 그린 것부터 사고 이틀 전에 그린 마지막 그림까지 40여점을 전시했다. 예슬양이 디자인한 구두, 남자친구와 입고 싶다며 그린 옷 등도 제작됐다. 구두 2점은 이겸비 디자이너가 직접 만들었다.
첫날임에도 전시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모두들 예슬 양의 못다 이룬 꿈에 가슴 아파했다.
경기도 파주에서 버스 두 번, 지하철 한 번을 갈아타고 전시장에 왔다는 김연(79) 할머니는 “너무 가슴이 아파서 왔다”며 기자의 손을 꼭 잡았다.
YMCA 동아리 활동을 통해 올 초 예슬 양을 알게 됐다는 경기도 시흥 은행고 김하진 양(16)은 “언니가 지금이라도 꿈을 이룰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번 전시는 “전시회라도 열어주려고 그림을 모아 놨다”는 예슬양 아버지의 인터뷰를 본 서촌갤러리 장영승 대표가 아버지를 끈질기게 설득해 마련됐다.
장 대표는 이날 오후 6시 관람객들을 모두 내보냈다. 한 시간 동안 전시장 안엔 예슬양의 부모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 예슬 양의 친구들뿐이었다. 이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 편히 관람할 수 있도록 한 작은 배려였다.
앞으로 장 대표는 더 많은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전시가 무기한인 이유는 이제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라며 “예슬양 전시를 시작으로 단원고 학생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슬양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책도 낼 예정이다. 같은 반 친구인 시연양이 음악가의 꿈을 이루 수 있도록 작곡가 윤일상 씨에게 곡 작업도 의뢰한 상태다.
장 대표는 “전국에서 사람들이 포스터를 붙이겠다며 10장, 20장씩 받아가는 바람에 2만장이 모두 나갔다”며 “여전히 사람들은 세월호 사고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이 잊지 않도록 프로젝트를 이어갈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